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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박지수 기자]

“부장님, 달(moon)에 출장 일정이 잡혔는 데 우주 공간이어서 속이 쓰린다고 합니다. 겔포스를 먹으면 괜찮을까요?”


“그럼, 목 아플 때 대비해 용각산도 챙겨가세요. 저번에 내가 달 출장 갔을 때 꼭 필요하더군.”


10년쯤 후엔 한국의 직장인들 사이에서 이런 대화가 오갈 가능성이 있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아찔할 정도로 우리 눈 앞에 속속 펼쳐지는 신기술들을 접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같은 세상이 실제로 도래할 것을 대비해 이미 투자와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CEO(최고경영자)가 있다. 김정균 보령 대표이사가 주인공으로 회사명의 보령제약에서 '제약'을 삭제하고 우주사업에 의지를 밝히면서 향후 성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러스트=홍순화 기자]

◇김정균 대표는…


△1985년 서울 출생(38) △미국 미시간대 산업공학(학사) △중앙대 대학원 사회행정약학(석사) △공군학사장교(2011) △삼정KPMG(2011~2014) △보령제약 전무 입사(2014) △보령홀딩스 경영기획실장(2017)·경영총괄담당임원(2018)·대표이사(2019. 12~현재) △보령 대표이사(2022. 3~현재) △액시엄 스페이스 이사회 이사(2023. 4~현재)


◆우주헬스케어 신사업 나서... 회사명에서 '제약' 삭제 


김정균 대표는 지난해 3월 CEO에 취임하면서 보령그룹의 차세대 성장동력을 우주 헬스케어 사업이라고 밝혔다. 전통 제약사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회사명의 ‘보령제약’에서 '제약'을 삭제한 것은 이같은 의지의 표현이다. CI(Corporate Identity), BI(Brand Identity)도 바꿨다.  


김 대표는 실제로 우주 사업에 투자를 집행했다. 지난해 초 미국 민간 우주정거정 건설 기업 액시엄(Axiom) 스페이스에 1000만달러(약 127억원)을 투자했고 그해 12월 5000만달러(약649억원)를 추가 투자했다. 이는 보령의 지난해 자기총계(5174억원)의 15.03%에 해당한다. 지난 3월에는 액시엄(Axiom) 스페이스와 합작법인(JV. Joint Venture)을 설립했다. 액시엄의 우주정거장에서 신약 개발을 하겠다는 내용이다.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에서는 단백질 결정이 바닥에 가라앉지 않아 균질하고 순도 높은 약물을 개발할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보령은 지난해 12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제1회 ‘케어 인 스페이스(Care In Space, CIS)’ 챌린지 데모데이 행사를 주최했다. 우주 공간에서 필요한 헬스케어 기술을 겨루는 대회로, 우주에서 인간이 겪는 신체 변화를 실시간 모니터할 수 있는 기술들이 소개됐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나 스페이스X가 아니라 한국 제약사 보령이 행사를 주최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이 행사에서 김 대표는 우주사업 전략을 밝혔다. 그는 "우주관광이 본격화되는 20~30년 뒤에는 누구나 우주로 갈 것이다. 병이 있는 사람도 우주로 가지 않을까. 10년 뒤가 아니라 20~30년 뒤를 보고 시작했다"고 밝혔다.


김정균 보령 대표가 지난해 12월 미국 LA에서 진행된 CIS 챌린지에서 우주 사업 계획을  밝히고 있다. [사진=보령] 

자신이 우주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도 밝혔다. "2019년 어느 국제기구 주최로 미국 휴스턴에 있는 미 항공우주국(NASA. 이하 나사)의 우주센터를 방문했는데, 나사 고위 임원에게 "우주에 아픈 사람을 보낼 수 있느냐"고 질문했다. 그런데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때 우주가 공간만 다르지 사람이 가 있다면 우리가 지금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령그룹의 바이오 계열사 보령바이오파마는 매각하기로 했다. 현재 동원그룹과 약 6000억원에 매각하는 것을 놓고 물밑 논의가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전통 제약사들이 바이오산업에 힘을 싣는 것과는 반대되는 행보인데, 이는 보령이 우주산업과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 마련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보령바이오파마는 인플루엔자(독감)와 간염 백신을 생산하고 있다. 


◆"선점자의 이점 누릴 것" vs. "중장기적 접근해야"


김 대표의 이같은 우주사업을 놓고 업계와 관계자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보령의 주가 흐름을 살펴보면 지난해 3월께 김정균 대표가 우주사업을 신사업으로 제시하자  주가가 20% 가까이 급락했고 이후에도 하락세를 보였다. 그렇지만 지난 7월부터는 반전세를 나타내고 있다. 주식시장 참여자들도 오락가락하고 있는 셈이다. 


보령의 최근 3년 주가추이. [이미지=네이버 증권] 

보령의 우주사업에 대해 신중론이 제기되는 가장 큰 이유는 우주산업이 아직 시장 발아기 단계라는 점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주가 우주 사업에 나서고는 있지만 생태계가 형성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우주 사업이 제약사의 미래 먹거리로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있는 신약이나 헬스케어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이와 반대로 한편에서는 지금의 신기술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우주산업 시장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앞당겨 열릴 수 있다며 이 경우 보령이 선점자의 이점(first mover advantage)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제약업계의 한 임원은 "제약산업은 건강과 직결돼 있다 보니 각종 규제로 성장의 한계가 명확하다. 국내 1위 전통 제약사 매출액이 2조원이 채 되지 않는다. 신약 개발도 쉽지 않다. 김정균 대표가 컨설턴트 출신으로 이같은 한계를 인식하고 돌파구를 찾았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와 관련, 보령 관계자는 "우주 헬스케어 사업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결정하지 않았지만 액시엄이 건설 중인 우주연구장에서 신약 연구개발 사업을 하는 것 핵심일 것"이라며 "이번 액시멈과 계약에 따라 국내에서 액시엄과 진행하는 모든 우주헬스케어 관련 사업은 합작사를 통해서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역대 최대 실적… ‘카나브 패밀리’ 앞세워 '매출액 1조 클럽' 눈앞


김정균 대표의 우주사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은 보령 실적이다. 보령은 지난해 매출액 7605억원, 영업이익 41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동기대비 각각 21.23%, 36.71% 증가해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김정균 대표가 지난해 3월 취임 이후 받은 첫 성적표다.


보령의 매출액, 영업이익률 추이. [이미지=더밸류뉴스] 전체 매출의 17.68%를 담당하는 카나브 패밀리(카나브정, 듀카브정 등)가 효자 노릇을 했다. 카나브는 피마사르탄을 주 성분으로 하는 고혈압치료제로, 지난 2021년 매출액 1125억원에서 지난해 1344억원으로 2000억원 가량 증가했다.   


보령 실적은 지속적으로 개선돼 왔다. 최근 5년(2017~2022) 보령의 매출액 연평균증가율(CAGR)은 12.46%이고 이 기간 평균 영업이익률은 6.05%이다. 지난 2010년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정이 국산신약 15호로 지정된 것을 비롯해 신약이 성과를 내고 있는 덕분이다. 


보령의 고협압치료제 시리즈 '카나브패밀리'. [이미지=보령]

‘카나브 패밀리’(2022년 매출액 1344억원, 17.68%)의 매출 성장에 이어 당뇨 치료제 트루리시티(541억원, 7.12%), 항암치료제 뉴라스타(346억원, 4.55%)도 실적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트루리시티는 GLP-1(혈당 조절 관여 호르몬 이용) 유사체 당뇨병 치료제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뉴라스타는 2세대 호중구감소증 치료제로, 국내 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도 처방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주변 의견 경청하는 '제약 3세'


김정균 대표의 '우주 사업 베팅'이 어떤 성과를 가져올 것인지는 결국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먼저 내디뎠다는 도전 의식은 기록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보령 오너 가계도와 지분 현황. 

김정균 대표는 김승호 창업주의 손자이자 김은선 보령 회장의 장남이다. 임직원들과 격의없이 소통하고 주변 의견을 경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공군학사장교(중위)로 전역하고 회계법인인 삼정KPMG 컨설턴트로 근무하다 2014년 보령제약 전무로 입사했다. 현재 보령홀딩스 대표이사와 보령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parkjisu09@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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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0-21 20:5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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