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최병오 형지 회장, 워런 버핏도 포기한 '신발 비즈니스' 살릴 수 있을까

- 형지에스콰이아 대표이사로 나서 턴어라운드 진두지휘

- 인수 8년째 여전히 성과 부진..."신발은 차별화 어려워"

  • 기사등록 2023-06-10 17:59:10
기사수정
[더밸류뉴스=신현숙 기자]

최병오 형지그룹 회장은 '1970년대 구두 황금기'를 이끌던 형지에스콰이아를 되살릴 수 있을까.


1970년대 매출액이 3000억원대에 육박하며 TV광고까지 대대적으로 했던 형지에스콰이아가 부산에 신규 매장을 오픈하며 재기에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형지에스콰이아는 현재 형지그룹 계열사이며 '장사 귀재'로 불리는 최병오 형지그룹 회장이 직접 대표이사로 나서 실적 개선을 독려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역부족인 형국이다. 


형지에스콰이아 매출액, 영업이익률 추이. [자료=형지에스콰이아 감사보고서]

◆1970년대 '구두 전성기' 이끌어... 연매출액 3000억 육박


9일 형지에스콰이아는 부산 사하구에 위치한 아트몰링 쇼핑몰에 에스콰이아 스토어를 오픈한다고 밝혔다.


에스콰이아 부산 아트몰링 스토어에서는 ‘쿨코리아’(COOL KOREA)라는 슬로건으로 샌들을 비롯한 여름 슈즈와 스니커즈, 핸드백 등 에스콰이아의 다양한 제품들을 판매할 예정이다. 

쿨코리아는 ESG 경영 활동의 일환으로 에너지 절감을 실천하고 매력적인 한국의 스타일과 브랜드를 알리자는 취지로 패션그룹형지와 한국에너지공단이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캠페인이다. 형지그룹은 캠페인과 매장 확대 등을 통해 인수 8년째인 형지에스콰이아 실적을 개선하겠다는 각오다. 


형지에스콰이아는 '제화 1세대'로 불리는 고(故) 이인표(1922~2002) 회장이 1961년 39세에 서울 명동에 '에스콰이아제화'를 설립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인표 회장은 당시 수작업으로 직접 구두를 만들었는데, 기껏해야 하루 세켤레였다. 구두를 찾던 대다수 직장인들은 발길을 돌렸고 이 회장은 연구 끝에 국내 최초로 분업화 시스템을 도입해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며 대기업으로 급성장했다. 1970년에는 서울 성수동에 1200평 부지를 매입해 국내 최초로 구두 공장을 설립했다. 에스콰이아는 전성기에는 임직원 1700여명에 연매출액 2900억원을 기록했다. 자동차 생산 공정에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도입한 미국 '자동차 왕' 헨리 포드에 빗대 '한국의 헨리 포드'로 불리기도 했다.  


이인표 에스콰이아 창업주. 

그렇지만 아들 이범씨가 회사 경영을 맡은 이후 무리한 사업 다각화와 상품권 발행으로 경영난에 빠졌고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직격탄을 맞았다. 이후 경영권이 2009년 사모펀드 H&Q에 넘어갔고 2015년 5월 형지그룹 계열사에 편입됐다. 인수 당시 최병오 회장은 "젊은 시절 서울 성수동에 우뚝 서 있던 에스콰이아 건물을 보면서 사업가로서의 꿈을 키웠다"며 재건 의지를 밝혔다. 

 

◆"옷은 차별화 가능하지만 구두 차별화는 어려워" 


그로부터 8년. 


형지에스콰이아 실적 개선 시그널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형지그룹은 인수 이후 상품권 발행 중단, 경기 성남 구두공장 가동 중단, 대표이사 교체, 그룹차원의 재무 지원 등을 진행했지만 형지에스콰이아를 '수렁'에서 건져내지 못하고 있다. 형지에스콰이아의 지난해 실적을 살펴보면 매출액 440억원, 영업이익 14억원, 당기순이익 14억원이다(형지에스콰이아는 일반기업회계기준을 채택하고 있고 회계연도는 7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이다. 단 지난해의 회계기간은 7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6개월이다). 


서울 동대문 시장에서 "골라 골라"하며 여성 의류를 판매하며 실전 노하우로 다저진 최병오 회장도 고전하고 있는 속사정은 뭘까?  


최병오 형지그룹 회장이 지난달 30일 에너지 절약을 모토로 하는 '쿨 코리아 챌린지' 행사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형지그룹] 

이와 관련, 업계에서는 차별화가 어려운 신발(shoe) 산업의 본질적 특징을 꼽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옷이나 가방은 디자인을 차별화하면 소비자가 곧바로 알아보고 구매한다. 그런데 신발은 디자인 차별화가 대단히 어렵다. 신발은 여전히 기능성 제품이다. 결국 승부는 가격에서 판가름나고 저가 경쟁이 벌어지는데 이것이 기업 경영난을 초래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신발은 신체 구조학의 측면에서 인간 눈(eye)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옷이나 가방은 인간 눈에 금방 눈에 띄지만 신발은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워런 버핏, "신발 사업 투자는 내 인생 최대 실패의 하나" 


신발은 '투자 대가'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도 자신의 투자 실패 리스트에 공식적으로 올린 산업이다. 


버핏은 1993년 4월 미국 신발 기업 텍스터 슈(Dexter shoe)를 4억2000만 달러(약 5400억원)에 인수했다. 덱스터 슈의 독특한 디자인에 강점이 있다고 보고 덱스터 슈를 소유한 해럴드 알폰드(Harold Alfond·1914~2007) 창업주에게  버크셔 해더웨이 지분 2%(2만 5203주)를 주는 조건이었다. 인수 당시 버핏은 "5년전만 해도 우리는 신발 사업에 뛰어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차를 타고 출근을 하면서 '신발만한 사업이 없어'라고 노래한다. 다른 사업은 너무 많은 전략을 필요로 하지만 신발 사업은 잘 만들기만 하면 된다"고 밝혔다. 


또, "덱스터는 고칠 곳이 없으며, 찰리(버핏의 평생동반자)와 내가 사업을 해오면서 본 가장 사업을 잘하고 있는 회사 가운데 하나다. 덱스터는 '비즈니스 보석(business jewel)'"이라며 흡족해했다.


부산 사하구 아트몰링에 오픈한 형지에스콰이아 스토어. [사진=형지에스콰이아] 

그렇지만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999년, 버핏은 덱스터 슈를 손해를 감수하고 매각했다. 매각 가격이 1억6000만달러였으니 손실액이 무려 2억6000만 달러였다. 


이듬해 버핏은 '주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의 덱스터 슈 투자가 뼈아픈 실패였다고 공식 인정했다. 이 편지에서 그는 "우리는 지난해 대부분의 사업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신발 비즈니스(덱스터 슈)는 예외였다"고 밝혔다. 주주와의 미팅에서 덱스터 슈에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그는 "나는 신발 산업이 디자인 차별화를 하면 소비자들이 지갑을 기꺼이 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중국산 저가 신발이 미국에 들어오면서 나는 그것이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깨달았다"고 언급했다. 


버크셔 해더웨이 주가 추이. [그래프=야후 파이낸스]

이와 반대로 덱스터 슈 매각으로 버크셔 해더웨이 지분 2%를 받은 알폰드 가문은 현재 미국 최고 부호 리스트에 올라있다. 버크셔 해더웨이 주식을 단 1주도 매각하지 않은 덕분이다. 1993년 당시 1만2000달러(약 1500만원)이던 버크셔 해더웨이 주가는 9일(현지 시각) 현재 30만7674달러(약 3억9000만원)로 25배 상승했다. 이에 따라 알폰드 가문이 보유한 버크셔 해더웨이 지분 가치는 105억달러(약 13조원)에 도달해 있다. 


형지에스콰이아는 전국에 170여개 매장을 갖고 있고 이번 부산 사하구 아트몰링 매장 오픈을 포함해 매장을 지속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hsh@thevaluenews.co.kr

[저작권 ⓒ 더밸류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TAG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23-06-10 17:59:10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삼성SDS
버핏연구소 텔레그램
기획·시리즈더보기
재무분석더보기
제약·바이오더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