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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연 칼럼] '한국 생산→수출' 40년 공식 흔들...K-철강 어디로 가나

- 현대제철·포스코, 美 루이지애나 58억달러 전기로 제철소 첫삽

- 美 50% 관세·EU 탄소규제·日 최대 55.3% 잠정관세…‘한국 생산→수출’ 공식 흔들려

- 해외 현지화는 기업의 생존전략…국내 생산기반 지키는 산업정책 뒤따라야

  • 기사등록 2026-09-14 08: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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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박수연 선임기자]

한국 철강산업의 위기는 수출이 줄어드는 데만 있지 않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한국에서 철강을 만들어 세계로 내보내던 성공 공식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데 있다.

[박수연 칼럼] \ 한국 생산→수출\  40년 공식 흔들...K-철강 어디로 가나현대제철과 포스코, 현대차·기아는 지난 4일(현지시간) 도널슨빌에서 ‘현대제철-포스코 루이지애나 스틸(HYUNDAI-POSCO Louisiana Steel·HPLS)’ 전기로 제철소 건설에 들어갔다.  [이미지=더밸류뉴스 | AI 생성]  

최근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시작된 대규모 제철소 투자는 이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대제철·포스코·현대차·기아는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주 도널슨빌에서 HPLS(HYUNDAI-POSCO Louisiana Steel) 전기로 제철소 착공식을 열고 본격적인 건설에 들어갔다.  총 58억달러, 우리 돈 약 8조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연간 자동차용 강판 180만톤과 일반 강판 90만톤 등 총 270만톤을 생산하며 2029년 양산이 목표다.


이 투자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해외공장 하나의 신설이 아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포항·광양·당진에서 철강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것이 한국 철강의 기본 공식이었다. 이제는 미국에서 팔 철강을 미국에서 직접 만드는 쪽으로 생산전략 자체가 바뀌고 있다.


값싼 인건비를 찾아 공장을 옮기던 과거와도 다르다. 미국의 고율 관세, 유럽의 탄소규제, 각국의 반덤핑 장벽이 기업에 현지 생산을 요구하고 있다. 시장에 제품만 들여보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장과 투자까지 시장 안으로 가져오라는 새로운 통상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 제조업이 지금 봐야 할 것은 바로 이 변화다.



 고율 관세가 바꾼 셈법…철강에서 자동차까지 미국서 만든다


미국은 지난 4월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알루미늄 관세 체계를 다시 강화했다. 철강 코일처럼 철강 자체로 구성된 제품에는 수입가격 전체를 기준으로 50% 관세가 적용된다. 상당 부분 철강으로 구성된 파생제품에는 25%, 일부 산업설비에는 내년까지 15%가 적용되는 등 세율은 품목별로 다르다. 세율은 달라도 미국 밖에서 만들어 들여오는 철강의 가격 경쟁력을 낮추겠다는 방향은 같다.

[박수연 칼럼] \ 한국 생산→수출\  40년 공식 흔들...K-철강 어디로 가나HPLS 루이지애나 제철소 지분 구조. [자료= 현대제철]

이처럼 높은 관세가 붙으면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것보다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는 편이 비용 측면에서 유리해진다.


HPLS는 원료 투입부터 최종 강판 생산까지 미국 내에서 완결하는 일관 생산기지다. 철광석과 천연가스로 직접환원철(DRI)을 만들고 이를 철스크랩과 함께 전기로에 넣어 쇳물을 생산한다. 이후 슬래브와 열연·냉연·도금강판까지 만든다. 원료에서 최종제품까지 미국 안에서 이어지는 일관 생산체제다. 미국 최초의 전기로 기반 자동차강판 전문 일관제철소다. 기존 고로 방식과 비교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약 70% 줄일 수 있다.


현대차·기아의 미국 완성차 공장까지 연결하면 철강 생산부터 자동차 조립까지 주요 공급망이 미국 안에서 이어진다. 과거 해외공장이 한국산 제품의 판매를 넓히기 위한 전진기지였다면, 이제는 생산 자체를 주요 소비시장 안으로 옮기는 방향으로 전략이 바뀌고 있다.



미국은 관세, 유럽은 탄소, 일본은 반덤핑...K-철강 겨눈 삼각 장벽


한국 철강의 셈법을 바꾸는 곳은 미국뿐만 아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1월 1일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본격 시행했다.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등이 대상이다. EU 수입업체는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량을 신고하고 그에 상응하는 CBAM 인증서를 구매·제출해야 한다. 탄소를 많이 배출한 철강일수록 유럽 시장에서 추가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다.


일본에서는 장벽이 이미 현실이 됐다. 일본 정부는 지난 8월 8일부터 한국과 중국산 용융아연도금강판에 29.2~55.3%의 잠정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적용 기간은 오는 12월 7일까지다. 지난해 8월 시작한 조사에서 덤핑 수입과 자국 산업 피해 가능성이 있다고 잠정 판단한 데 따른 조치다.


별도로 일본은 지난 6월부터 한국·중국·대만산 열연강판과 냉연강판에 대해서도 반덤핑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일본제철·JFE스틸·고베제강 등 일본 주요 철강업체들이 조사를 신청했다.


한국도 올해 초 일본·중국산 열연강판에 최대 33.43%의 반덤핑 관세 부과를 추진했다. 이를 일본 측 조치에 대한 직접적인 ‘보복’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한·일 양국이 잇달아 무역구제 조치를 꺼내 들면서 철강을 둘러싼 통상 긴장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고율 관세에 대응해야 하고, 유럽에서는 탄소 배출 비용을 줄여야 하며, 일본에서는 반덤핑 규제를 넘어야 한다. 장벽의 형태는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주요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동시에 생산과 투자를 자국 안으로 끌어들이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수출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한국 제조업에는 생산전략 자체를 다시 짜야 하는 변화다.



공장은 나가도 뿌리는 남겨야...산업정책의 새로운 숙제


해외 투자가 늘고 있다고 해서 국내 투자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포스코는 지난 6월 광양제철소에 약 6000억원을 투자한 연산 250만톤 규모 전기로를 준공했다. 단일 설비 기준 국내 최대 규모다. 기존 고로보다 탄소 배출을 약 75% 줄일 수 있으며 향후 자동차강판 등 고급강 생산에도 활용한다.

지난 8일에는 광양제철소에 4800억원을 투자해 연산 45만톤 규모의 자동차용 용융아연도금강판 공장도 착공했다. SUV·RV용 광폭 강판과 전기로 소재를 활용한 탄소저감 제품 생산을 위한 투자다. 이런 국내 투자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루이지애나 제철소 건설만으로 한국 철강산업의 공동화를 단정하기는 이르다.

[박수연 칼럼] \ 한국 생산→수출\  40년 공식 흔들...K-철강 어디로 가나한국 철강기업의 국내외 주요 투자 규모. [자료= 각사 발표(2026]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앞으로 한국 기업은 어떤 생산을 국내에 남기고, 어떤 생산을 해외로 옮길 것인가.


기업의 판단 기준은 분명하다. 시장과 가깝고 관세 부담이 적으며 고객사가 있는 곳에 생산기지를 둔다. 미국에서 만드는 편이 유리하다면 현지 투자를 늘리는 것이 기업으로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하지만 기업에 유리한 선택이 국내 산업에도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철강산업은 제철소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원료와 철스크랩, 설비·정비, 가공, 물류, 연구개발, 숙련 인력까지 촘촘한 산업 생태계가 연결돼 있다. 핵심 생산이 해외로 옮겨가면 주변 공급망과 기술, 고용도 함께 영향을 받는다. 정부가 할 일은 기업에 국내 투자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생산할 경제적 이유를 만드는 것이다.


전기로를 돌릴 수 있는 안정적이고 경쟁력 있는 전력, 고품질 철스크랩 공급체계, 저탄소 설비 투자에 대한 금융·세제 지원이 필요하다. 수소환원제철과 고급 자동차강판처럼 앞으로 철강 경쟁력을 좌우할 연구개발과 원천기술도 국내에 남겨야 한다. 기업에 애국심을 요구해 공장을 붙잡는 시대는 지났다. 한국에서 생산하는 편이 기술과 비용, 인력과 공급망 측면에서 경쟁력이 있어야 기업도 남는다. 


철강은 한국 산업화의 기반이었다. 포항과 광양에서 생산한 철강을 바탕으로 자동차와 조선, 가전과 기계산업이 함께 성장했다. 철강 생산기반의 변화가 몇몇 철강회사의 실적 문제로 끝날 수 없는 이유다.


루이지애나 HPLS는 K-철강이 미국 시장에 직접 생산기지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기회다. 동시에 국내 제조업에는 새로운 과제를 남긴다. 해외 생산이 늘어날수록 국내의 핵심기술과 연구개발, 고부가 생산, 공급망을 어떻게 유지할지가 더 중요해진다.


앞으로 산업 경쟁력을 판단하는 기준도 수출 규모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세계로 나간 한국 기업이 국내 생산기반과 기술 생태계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공장이 국경을 넘는 시대에는 산업정책의 초점도 수출 확대에서 국내 생산기반과 기술 경쟁력을 지키는 쪽으로 옮겨가야 한다.



ynsooyn@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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