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조선업은 2026년 현재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전 세계를 휩쓰는 탈탄소 물결 속에서 한국의 독보적인 LNG 운반선 및 친환경 선박 건조 능력은 글로벌 시장을 압도하고 있다. 주요 조선사들의 도크(Dock)는 이미 2029년 인도분까지 꽉 차 있으며, 선별 수주 전략을 통해 수익성 또한 정점에 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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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형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수주잔량은 2023년 정점을 찍고 완만한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위기의 신호가 아니라, 저가 수주라는 해묵은 관행을 끊어내고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도크를 채운 '전략적 선택'의 결과다. 돈 안 되는 배는 거절하고 LNG선, 암모니아 운반선 등 고수익 선박 위주로 도크를 채웠기 때문이다. 즉, "양보다 질"로 바뀐 전략적 산물이다.
이제 K-조선의 과제는 지난해 3분기 말 현재 조선 3사가 쌓아둔 200조원의 일감을 얼마나 차질 없이, 안전하게 고품질로 완공해내느냐는 '현장의 시간'으로 옮겨가고 있다.
"일감이 200조 원이나 쌓였다"는 말은 경영진에게는 승전보지만, 현장 관리자들에게는 "이제부터 단 한 점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극한의 레이스가 시작됐다"는 선언과 같다. 선박 건조가 하루만 늦어져도 거액의 지체보상금을 물어야 한다. 때문에 모든 공정이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돌아가야 한다.
배는 계약 시점의 가격은 정해져 있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후판(철판) 가격이 오르거나 인건비가 상승하면 이익이 줄어든다. 계약금이 실제 '이익'으로 남으려면 현장에서의 원가 관리와 공정 효율화가 필수적이다. 인력난으로 숙련도가 낮은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난 상황에서 선박들을 불량 없이 건조해내는 것이 K-조선의 기술 신뢰도를 결정짓는 잣대가 된다.
200조 원의 수주 잔고는 K-조선에 주어진 '거대한 성찬'과 같다. 하지만 이 성찬을 온전히 우리의 영양분으로 섭취하기 위해서는, 주방(현장)에서 음식을 태우지 않고(공기 지연), 레시피대로 정확하게(품질 유지), 안전하게 요리해내야 한다. 이제 승부는 수주 영업소의 책상이 아니라, 뜨거운 용접 불꽃이 튀는 야드 위에서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이 '장밋빛 호황'은 역설적으로 한국 조선업이 안고 있던 고질적인 약점들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감은 넘치는데 배를 만들 사람이 없고, 기술 격차는 후발국에 의해 턱밑까지 추격당하고 있다. 지금의 호황이 일시적인 '불꽃'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우리는 승리의 도취에서 벗어나 뼈를 깎는 혁신을 단행해야 한다.
◆ 숙련 인력 단절...연평균 1만 명 이상 인력 부족
현재 한국 조선업이 직면한 가장 시급하고 파괴적인 문제는 '숙련 인력의 단절'이다. 지난 10년의 불황기 동안 숙련된 기술자들이 현장을 떠났고, 힘들고 위험하다는 인식 탓에 청년층의 유입은 끊겼다. 2026년 현재 조선업계는 연평균 1만 명 이상의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며, 이를 메우기 위해 도입된 외국인 노동자의 비중은 급격히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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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640명으로 불과 5%에 불과했던 조선 3사 내 외국인 비중은 지난해 2만200명으로 20%를 상회하며 야드의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올해는 컨테이너선 등 노동 집약적 선박 건조가 피크를 이루면서 전체의 25%인 2만3000명선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업 노동자 4명 중 1명 꼴로 외국인임 셈이다.
이제 외국인 노동자는 '보조 인력'이 아닌, K-조선의 공정을 지탱하는 '필수 동력'이 됐지만, 이는 동시에 한국 조선업의 기술 전수 단절과 대외 의존도 심화라는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의사소통 부재와 저숙련 노동력 투입에 따른 안전사고 및 품질 저하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외국인 쿼터를 늘리는 '땜질식 처방'을 넘어, '조선업 임금 체계 및 원하청 구조의 근본적 개편'이 필요하다. 하청 중심의 위험 외주화와 저임금 구조를 개선하여 자국 숙련공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를 단순 노무자가 아닌 '숙련 기능인'으로 양성하기 위한 맞춤형 교육 및 정주 시스템을 국가 차원에서 구축해야 한다.
◆ 중국의 질적 추격, 대형 크루즈선・자율운항 기술 분야에서 경고음
과거 중국 조선업이 저렴한 인건비를 앞세운 범용선 시장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한국의 텃밭인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까지 위협하고 있다. 중국은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을 바탕으로 LNG 운반선 수주 비중을 급격히 늘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대형 크루즈선과 자율운항 기술 분야에서도 한국을 매섭게 추격 중이다. 기술적 우위가 1~2년 내로 좁혀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도처에서 들린다.
한국은 이제 '조선'을 넘어 '해양 모빌리티 기술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암모니아 및 수소 추진선의 상용화를 세계 최초로 선점하고, 인공지능(AI) 기반의 레벨 4 자율운항 선박 시장을 장악해야 한다. 기술의 개념 증명을 넘어 실질적인 표준을 선점하는 것이 중국의 물량 공세를 이겨낼 유일한 길이다.
인구 절벽 시대에 사람의 손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국내 대형 조선사들은 스마트 야드 구축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실제 공정의 자동화율은 자동차나 반도체 산업에 비해 현저히 낮다. 특히 중소형 조선소와 협력업체들은 투자 여력 부족으로 디지털 전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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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 야드 2.0, 노동 집약에서 기술 집약으로의 '생산 혁명'
야드 전체를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으로 연결하여 설계부터 건조까지 실시간 최적화하는 '스마트 야드 2.0'으로 이행해야 한다. 용접, 도장 등 고위험 공정에는 로봇 투입을 전면 확대하고, 중소 협력사까지 연결되는 공급망 디지털화를 통해 산업 생태계 전체의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2026년의 슈퍼 사이클은 한국 조선업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이자 시험대다. 지금의 수익을 단순히 재무구조 개선에만 쓸 것이 아니라, 인력난 해소를 위한 구조 개편과 초격차 기술 개발에 공격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조선업은 단순한 제조 산업이 아니라 국가의 에너지 안보와 방산을 책임지는 전략 산업이다. 정부는 과감한 규제 혁신과 인력 양성 정책으로 뒷받침하고, 기업은 '기술력 1위'라는 자부심을 넘어 '생산 방식의 혁명'을 주도해야 한다.
이제 한국 조선업은 더 이상 무거운 철판을 이어 붙이는 거대한 공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인공지능과 친환경 에너지 기술을 결합해 바다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꾸는 '오션 트랜스포머'로 거듭날 때, 비로소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초격차 경쟁력이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