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예린 문화평론가·출판마케터·비평연대] 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미룬다. 연말이라 약속이 많아서, 청소나 설거지처럼 처리할 자잘한 일들이 있어서, 지금은 조금 집중하기 어려워서 등 이유는 많다. 할 일을 미루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 괴롭지만, 도저히 일을 시작할 수는 없어서 애써 모른 척해 본다. 그러다 발등이 뜨거워질 무렵에야 눈물을 머금고 부랴부랴 일을 처리한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미루고 또 미루는 건 게으르기 때문일까? 문제는 게으른 당신의 천성이 아닌, 완벽해야 한다는 착각이라는 이야기도 이제 뻔하다. 할 일을 미루는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이젠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완벽주의를 버리기가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심리학자 피터 홀린스는 ‘나태한 완벽주의자’로 당신의 나태한 완벽주의를 완벽하게 깨부순다.
‘나태한 완벽주의자’ 피터 홀린스 지음, 박정은 옮김, 넥서스BIZ. [이미지=알라딘]
책장을 열자마자 저자 피터 홀린스의 팩트 폭력을 휘두른다. 미루고 또 미루면서 ‘단지 내가 게을러서’라고 쉽게 말하는 것마저 게으르다니. 나태한 완벽주의자들의 마음을 뜨끔하게 만든 그는 알면서도 미루려는 심리 요인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그저 하기 싫다고 생각했던 마음에 파고들어 그 생각과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혼란스러움, 내가 처리할 수 없을 것 같단 두려움, 실패하면 안 된다는 ‘고정 마인드셋’, 신체적 피로감, 목표를 향한 무관심, 스스로에 대한 신뢰 부족, 의욕 상실, 편안함 추구. 비슷한 듯 다른 이유들을 이해시키고, 당신의 상황에 딱 맞는 해결 방법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어떤 일들은 원래 어렵기 마련이며, 그 과정에서 힘겨워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 단지 그 일을 해내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일 뿐이다. 때로는 진짜 장애물은 우리 자신의 부정적인 태도일 수도 있다. _ 책 ‘나태한 완벽주의자’에서
피터 홀린스는 게으른 자신을 반성하라며 채찍질하지 않는다. 다만, 수용전념 이론을 기반으로 우리가 하기 싫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헤쳐나갈 수 있도록 현실적으로 냉철하게 접근한다. 내 마음이 자연스레 나태함을 선택하지 않으려면 뇌에 힘을 줘야 한다. 책은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하는 능력과 심리적 유연성, 감정 조절 능력을 키우길 처방한다. 어떤 일을 마주쳤을 때 마음이 불편해졌다면, 왜 불편한지 살펴보고 내 마음을 이해해주고, 내가 과잉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내가 발 딛고 있는 지금에 머무르며 행동하기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삶의 목적을 따르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자연스럽게 동기가 생기고 행동할 의욕이 솟아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다. 우리는 먼저 의식적으로 목표를 향해 행동하기로 선택해야 하고, 그런 행동이 동기를 만들어내고 지속시킨다. _ 책 ‘나태한 완벽주의자’에서
이 책에서 가장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단순한 절제력이 아닌 ‘자기 극복’이다. 내 눈앞에 놓인 과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는 것은 당신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불편함은 느낌일 뿐 실제로 당신이 하기에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눈앞에 닥친 일이 하기 싫은 마음의 다양한 결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시작할 용기를 내지 않으면 무엇도 바뀌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렇게 반대로 해야만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며 스스로의 마음을 극복할 때 진정으로 일할 의욕이 샘솟는다는 특급 비밀을 폭로한다.
결국, 우리는 감정적으로 압도당하더라도, 혹은 우리가 처한 상황이 불공평하고, 불쾌하며, 고통스럽거나 두렵고 혼란스러울지라도, 스스로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_ 책 ‘나태한 완벽주의자’에서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단순한 진리가 무섭기도 하다. 결국 내 마음만 바꿔 먹으면 쉽게 일이 풀릴 수 있다는 말은, 결국 당장의 불편한 마음 때문에 미뤄서 고통스럽기를 선택하는 것은 나라는 슬픈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종의 이유로 하기 싫은 일을 지금 시작해서 불편을 직면하든, 외면하고 회피하며 불안해하다가 뒤늦게 일을 시작하든 기분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적어도 빨리 일을 시작하면 우리는 보람과 목표를 획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노트북을 펼치고 앉았다. 하얗기만 한 빈 문서 창에 반짝이는 커서를 보고 있다니 부담이 밀려왔다. 그렇지만, 일단 쓰기 시작하자 마음이 편해졌고, 원고가 마무리 되어 가는 지금, 내 마음은 원고 쓰기를 시작하기 전보다 훨씬 가볍다. 지금 당신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미뤄둔 할 일이 있다면, 일단 나처럼 막무가내로 시작해 보길 권한다. 피터 홀린스의 말처럼 막상 시작하면 일이 쉽게 풀리는 경험을 쌓다 보면 다음에는 조금 더 빨리 시작할 마음의 근력이 붙을 것이다.
황예린 문화평론가·출판마케터·비평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