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로봇산업이 중국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지난 9월 30일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피지컬 AI시대, 중국 로봇산업의 성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로봇 생산을 넘어 핵심 기술 경쟁력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지난해 중국 산업용 로봇 신규 설치대수는 29만5000대로 전 세계의 54%를 차지했다. 단순한 시장 규모가 아니다. 중국 기업 링커봇이 개발한 상업용 로봇핸드는 세계 시장 점유율 80%를 기록하며 테슬라 옵티머스와 영국 셰도우핸드를 능가하는 기술력을 보여줬고 유니트리의 4족 보행 로봇은 글로벌 시장의 70%를 장악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성장 속도다. 중국 로봇산업 매출은 지난 2020년 1061억위안(약 21조원)에서 지난해 2379억위안으로 연평균 22.4% 성장했다. 같은 기간 한국은 연평균 1.4%에 그쳤다. 로봇밀도는 2020년 1만명당 246대에서 2023년 470대로 급증하며 세계 8위에서 3위로 도약했다. 한국과의 기술격차는 2013년 1년에서 2023년 0.3년으로 줄었다. 일본을 100으로 볼 때 한국은 89.1, 중국은 84.4로 그 차이가 5%포인트에 불과하다. 이대로라면 1~2년 내 역전이 이뤄질 전망이다.
글로벌 산업 로봇 시장 점유율. 2025년 9월 [자료: IFR]
◆ 세계 최초 기술 표준까지 선점...중국의 '3중 전략'이 만든 압도적 우위
중국 로봇산업의 성공은 수요·정책·공급망이라는 3중 전략의 결과다.
첫째, 압도적인 내수시장이 기술 혁신을 이끌었다. 지난해 로봇 판매 분야를 보면 전자 제조가 8만대 이상으로 가장 크고, 자동차 부품·금속제품·식음료가 뒤를 잇는다. 전통산업에서도 '기계 대체' 정책으로 로봇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서비스 로봇 분야는 더 압도적이다. 지난 2분기 글로벌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중국 제품 점유율은 67.7%였다. 상위 5대 기업(로보락·에코박스·드리미·샤오미·나르왈)이 모두 중국 기업이다. 지난 5월 중국 서비스 로봇 생산량은 121만6000대로 전년대비 13.8% 증가했고, 수출액의 62.5%가 일본과 한국으로 향했다. 상업용 서비스 로봇 분야에서는 중국 제조업체가 84.7%의 점유율을 차지한다.
둘째, 중앙과 지방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산업을 폭발시켰다. '중국제조 2025', '14차 5개년 로봇산업 발전 규획'을 통해 올해까지 로봇산업 매출액 연평균 증가율 20% 이상을 목표로 설정했고, 실제로 22.4%를 달성했다. 모건스탠리는 중국 로봇시장이 지난해 470억달러(약 64조원)에서 2028년 1080억달러(약 147조원)로 연평균 23%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베이징은 R&D 지원에 최대 3000만위안(약 57억원)을 지원하며, 상하이·선전·항저우 등도 수백억 위안 규모의 산업기금을 조성했다.
셋째, 독자적 공급망 구축으로 원가경쟁력까지 확보했다. 과거 일본·독일이 장악했던 감속기·서보모터(Servo Motors)·정밀센서 등 핵심 부품에서 자급률을 높였다. 감속기 분야에서 일본 그린하모닉은 중국 시장 점유율 20% 가량을 차지하며 일본 스미토모, 독일 하모닉드라이브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국가별 산업용 로봇 설치. [자료= IFR, 2025년 9월]
중국은 희토류(자석·모터용) 세계 생산의 60%, 리튬이온 배터리 세계 생산의 70%를 공급하며, 이를 로봇 배터리팩으로 연계하고 있다. 2023년 처음으로 중국산 로봇이 자국 시장 공급의 54%를 차지하면서 국산화가 본격화됐다. 이포트·이스툰·이노밴스·시아순·스텝 등 중국 제조업체 4개사가 중국 산업용 로봇 판매시장 상위 10위권에 진입했다.
기술 표준 선점까지 이뤄냈다. 지난 5월 중국은 세계 최초로 '휴머노이드 로봇 지능화 분류 표준'(지각·의사결정·실행·협력적 상호작용에 걸쳐 L1-L5 등급)을 발표했다. 글로벌 거버넌스 프레임워크를 제안하며 사실상의 세계 표준을 수립하려는 전략이다. 상하이는 '인간 존엄성 보호' 및 '인간 안전 보장'을 강조하는 중국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 거버넌스 가이드라인을 도입했다.
◆ 중국 로봇산업 매출 4년새 2배 '폭증'…한국은 제자리걸음 '민낯'
한국 로봇산업의 현실은 냉혹하다. 지난 2023년 총 매출액은 5조9805억원으로 전년대비 0.5% 증가에 그쳤다. 최근 3년간 연평균 성장률 1.4%는 중국(22.4%)의 16분의 1 수준이다. 제조용 로봇(+0.5%)과 부품·소프트웨어(+0.4%)는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서비스용 로봇만 6.4% 성장했지만 전체 매출의 17.5%에 불과하다.
글로벌 산업 로봇 마켓 성장 전망. [자료= Fortune Business Insights]
로봇밀도 1012대로 세계 1위라는 수치는 역설적으로 성장 한계를 보여준다. 이미 고도로 자동화된 한국 제조업은 추가 로봇 도입 여력이 제한적이다. 문제는 이 성과마저 과거의 유산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신규 설치대수는 3만600대로 전년대비 3% 감소했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4위로 평가되지만, 국내 기업의 AI 로봇 분야 글로벌 경쟁력은 아직 제한적이다.
협동로봇 시장에서는 덴마크의 유니버설로봇(Universal Robots)과 일본의 파낙(Fanuc)이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 모두에서 돌파구를 모색 중이다. 2023년 글로벌 협동로봇 출하량이 전년대비 감소세를 보이는 가운데, 주요 기업들은 체질 개선과 시장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로보틱스는 같은 해 협동로봇과 AMR 사업부를 분사해 전문성을 강화했고, 두산로보틱스와 현대로보틱스도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며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부품 부문에서는 SPG가 정밀감속기 국산화에 앞장서고, CMES가 현대차·LG 등 글로벌 제조사의 생산라인에 AI 기반 로봇 솔루션을 공급하며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다만 업계 전반의 약점은 ‘플랫폼 경쟁력’으로 지적된다. 맥킨지는 AI 경쟁력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와 생태계 구축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조 강국인 한국이 글로벌 로봇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 중심 전략을 넘어 통합 AI 플랫폼과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가 시급하다는 평가다.
◆ 한국 로봇산업, 스마트팩토리·자동화 노하우 활용해 'AI 플랫폼' 경쟁력 강화 시급
정부는 지난해 '제4차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2024~2028)'을 수립하고 2030년까지 민관합동 3조원 투자, 첨단로봇 100만대 보급을 목표로 제시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지난 4년간 연평균 22.4% 성장을 달성했다. 지방정부 93곳이 보조금을 지급하고, 베이징은 단일 프로젝트에 최대 57억원을 지원한다. 한국도 투자 계획을 늘리고 정부·대기업·중소기업이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글로벌 AI 로봇 마켓 성장 전망. [자료=Fortune Business Insights]
한국의 강점으로 꼽히는 반도체·정밀 장비·부품 생태계도 로봇산업과의 연결고리가 약하다. 로봇은 융합 산업이지만, 국내에서는 산업 생태계 차원의 협력이 미흡하다. 시장조사기관 예측에 따르면 한국 산업용 로봇 시장은 지난해 3억7620만달러에서 2033년 12억5795만달러로 연평균 12.83% 성장이 전망된다. 그러나 이는 글로벌 평균(14.2%)보다 낮은 수치다.
가장 큰 문제는 위기의식의 부재다. 경쟁에 한 발 뒤쳐진 사이, 중국은 시장·기술·표준을 모두 장악했다. 올해는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의 '양산 원년'이 될 예정이다. 모건스탠리는 2030년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출하량이 25만대를 넘을 것으로 전망한다. 골드만삭스는 "중국 공급업체들이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었으나 대규모 주문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며 신중한 시각을 보였지만, 이는 곧 폭발적 성장의 전야일 수 있다.
산업 전문가들은 한국이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에서 쌓은 제조 경험을 AI 로봇 분야에 접목한다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스마트 팩토리, 반도체 제조, 자동차 생산 등에서 축적한 자동화 노하우는 AI 로봇 개발에 활용 가능하다.
AI 로봇 시장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피지컬 AI는 로봇이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며 인간과 협업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정밀 제조 역량, 반도체와 배터리 기술, 5G 인프라 등 한국이 가진 강점을 AI 플랫폼과 융합한다면, 글로벌 AI 로봇 시장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리더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기회의 창은 빠르게 닫히고 있다. 지금이 바로 한국 로봇 산업의 두 번째 도약을 위한 골든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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