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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문의 독서 설명문] ④ 도시는 부동산이 다가 아니다

  • 기사등록 2025-10-28 08: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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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문이 쓰지만 설명만 하진 않습니다. 설명문은 이 칼럼을 쓰는 현직 건축가 이름입니다. 그리고 독서를 사랑하는 젊은 지성인입니다. 그는 읽는 행위를 통해 사유와 궁리를 건축하고자 합니다. '설명문의 독서 설명문'을 연재합니다. 책 너머의 이야기, 책이 쌓고 책이 무너뜨리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편집자주]

[설명문 건축 및 공간디자이너∙문화평론가] 나는 잠실에 산다. 직장은 논현이다. 송파와 강남은 자연스럽게 일상의 반경이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강 건너에서 주말을 보낸다. 서촌에서 밥을 먹고, 혜화를 혼자 걷고, 종로에서 책을 읽는다. 잠실에 살지만, 나의 동네는 한강 너머에 있다. 3호선을 타고 한강을 건너는 일만큼 요즘의 나를 설레게 하는 일도 드문 것 같다. 오프라인에서의 주된 소비도 그곳에서 이루어진다. 경험이 집과 전혀 관계없는 곳에서 만들어진다. 


이건 비단 나의 이야기만은 아닌듯하다. SNS에서 지인들을 뜬금없는 장소에서 발견하는 때가 많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울 곳곳에 본인들만의 아지트 같은 동네가 있다. 직장, 거주지와의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는 지역에 사람들의 생활 반경이 생겨난다. 가치가 끊임없이 유동하고 있다. 입지에 따라 인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입지를 낳는다. 움직이지 않는다 뿐이지 건물도 한 주 단위로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어느 지역이 더 매력적인가로 그곳의 흥망성쇠가 갈린다. 도시가 묽어진 듯한 인상을 받는 요즘이다.


여전히 지도 위에서 가치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점을 찍어 동심원을 그리고, 출퇴근 거리와 상권의 유효성을 가늠한다. 도시가 액체처럼 흐르게 된 시대에, 평면에서 가치를 찾는 이 전통적인 방식은 설득력을 잃은지 오래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입지’를 계산할 것이 아니라, ‘흐름’을 관측해야 한다. 미처 수치로 드러나지 않은 경험, 통계보다 빠르게 감지되는 머무름, 소비를 만들어내는 관계의 생성을 말이다. 이런 것들을 읽어내는 능력은 지도 위에서 길러지지 않는다. 우리는 도시를 느끼고, 경험하고, 감각해야 한다. 



[설명문의 독서 설명문] ④ 도시는 부동산이 다가 아니다

도시 관측소. 김세훈 지음. 책사람집.



『도시 관측소』의 저자 김세훈 교수는 도시 속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능력을 ‘도시 관측력’이라 말한다. 그가 말하는 도시 관측력은 ‘지리적 통찰’이나 ‘정량적 분석’이 아니다. 데이터보다 앞서는 감각적 분석력, 즉 공간의 내러티브를 읽는 능력이다. 이건 선행지표에 가깝다. 홍대 입구가 쇠락하고, 성수가 흥했다는 뉴스의 지표는 사후의 정리일 뿐이다. 도시 관측력은 변화를 실시간으로 포착하는 눈이다. 어디에 머무르고, 어떤 관계망이 새롭게 생겨나며, 소비와 경험이 어떻게 재편되는지 읽어내는 능력이다.


저자는 ‘도시 관측력’을 단순한 트렌드 감지와 구별한다.


“관측은 서슬 퍼런 날 위에 서 있는 예민한 ‘감각’이자 판단을 실행으로 옮기는 ‘결단’입니다.”


거대한 흐름과 기회를 포착하고, 내 의사결정에 반영할 수 있는 전략적 안목, 그것이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도시 관측력’이다.


책에서는 다양한 실제 사례를 소개한다. ‘제4의 공간’처럼 자기 몰입과 회복에 집중하는 장소, 작은 갤러리나 공유 오피스, 몰입형 카페 등은 도시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다. 김세훈 교수는 이런 공간들을 통해 경험과 행동 단위로 도시가 소비되고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공간이 플랫폼이 되고, 플랫폼이 도시를 재편하는 과정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도시 관측소』는 인구 감소와 산업 변화 속에서 도시가 대응하는 다양한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승자 독식을 통해 ‘필터 아웃’ 되고 있는 캘리포니아, 내부 네트워크를 재조정하고 사람들의 ‘접속 방식’을 재편한 타마 뉴타운 등의 사례가 그것이다.  


저자는 사람들의 이동과 만남, 소비와 경험이 만들어내는 패턴을 읽는다. 사람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방식으로 도시와 상호작용하는지에 따라 지역의 흥망이 결정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승자독식의 도시나 재편된 네트워크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 있는 도시적 통찰은, 바로 이런 ‘접속과 흐름’의 관점에서 비롯된다. 


앞서 말한 내용들을 포함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은 꽤 명확한듯하다. 오늘날 도시에서의 가치는 사람들이 도시에 ‘접속하는 방식’에서 창출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감지하고 고유한 방식으로 실행하는 ‘도시 관측력’을 기르는 것이다. 관찰하고 몰입하는 사람에게 도시는 열린다. 



[설명문의 독서 설명문] ④ 도시는 부동산이 다가 아니다

 설명문 건축 및 공간디자이너·문화평론가·비평연대


arcseol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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