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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연 칼럼] 트럼프가 던진 기회, 한국 조선업 '골든타임' 잡아야 하는 이유

- 트럼프 "한국과 조선업 협력" 발언 이면의 냉혹한 현실

- LNG선 독점 흔들리고 범용선은 중국에...고부가 전략의 함정

- 가격 전쟁은 독약...스마트야드와 범용선 고급화로 돌파구 찾아야

  • 기사등록 2025-11-03 08: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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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박수연 선임기자]

"한국은 소중한 친구이자 동맹입니다. 우리는 조선업에서 한국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주 APEC CEO 서밋에서 한국 조선업을 거명하며 협력 의지를 밝혔다. "2차 세계대전 때 하루에 한 척씩 배를 만들던 미국이 지금은 선박을 제대로 건조하지 못하지만, 한국과의 협력으로 다시 번창하는 조선업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그의 발언은 한국 조선업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실제로 한미 정상회담 직후 양국은 구체적 협력 방안을 발표했다. HD현대와 서버러스 캐피탈은 미국 조선소 현대화를 위한 50억 달러(약 7조원) 규모 공동 투자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한화오션은 필리조선소에 50억 달러를 투자해 생산능력을 10배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런 호재 속에서 한국 조선업은 중장기적으로 여러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수주 점유율은 17%(1098만CGT)로 전년대비 3%포인트 하락했으며, 중국은 70%(4645만CGT)를 기록하며 전년대비 11%포인트 상승했다. 한중 양국의 점유율 격차는 53%포인트로 1년 전보다 14%포인트 벌어졌다. 전년대비 한국은 9% 증가에 그친 반면 중국은 58% 급증했다. 트럼프의 호의적 발언과 달리, 시장 점유율에서 중국에 밀리고 있다.


◆LNG선 독점 흔들리고 범용선은 중국에...고부가 전략의 함정


한국 조선업의 핵심 경쟁력은 LNG선이다. 영하 163도의 극저온 액화천연가스를 운반하는 LNG선은 기술 난이도가 높아 한국이 사실상 독점해왔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LNG선 발주량 554만CGT 중 한국이 441만CGT(80%)를 수주하며 9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박수연 칼럼] 트럼프가 던진 기회, 한국 조선업 \ 골든타임\  잡아야 하는 이유한국 조선업 선종별 수주 구성(2025년 7월) [출처: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그러나 이 독점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이 공격적인 저가 수주와 기술 개발로 빠르게 추격하면서다. 지난해 4월~10월 기준 LNG선 수주에서 중국은 33척, 한국은 21척을 기록하며 역전당했다. 


최근 들어 상황이 반전되는 듯 보인다. 미국이 지난달부터 중국 선박에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면서 '차이나 리스크'가 부각됐고, 지난 1월 한국은 전세계 수주의 62%(90만CGT)를 기록하며 중국(19%, 27만CGT)을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일시적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 조선업 수주는 월별 변동성이 크고 중국의 기술력 향상은 지속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보면 중국이 51.8% 점유율로 여전히 1위이며, 한국은 25.1%로 격차가 있다. 더 큰 문제는 LNG선 시장 자체가 포화 상태라는 점이다. 올해 상반기 LNG선 발주량은 전년대비 82.9% 급감한 105만CGT에 그쳤다. 한국 조선업은 LNG선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범용선 시장도 입지가 크게 약화됐다. 지난해 4월~10월 기준 컨테이너선 수주에서 중국은 209척, 한국은 32척에 그쳤다. 대형 탱커 시장도 2022년 이후 중국이 한국을 앞섰다. 지난해 말 전세계 수주잔량 1억5717만CGT 중 중국이 58%(9078만CGT)를 차지한 반면 한국은 24%(3787만CGT)에 머물렀다. 


심각한 문제는 가격 격차다. 현재 한국산 선박은 중국산 대비 약 20% 비싸다. 과거에는 이 가격 차이가 품질과 기술력으로 정당화됐지만, 중국이 품질 격차를 빠르게 좁히면서 선주들의 선택이 달라지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양종서 수석연구원은 "중국산과 가격차이가 지속되는 가운데 그 차이만큼의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면서 대형선 시장에서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변수 적극 활용…핵잠수함 수십조원 수주 기대


일각에서는 가격 인하를 통한 점유율 회복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위험한 발상이다. 중국 조선업은 정부 지원을 받는 만큼 한국이 가격을 내리면 중국은 더 강력한 가격 인하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2000년대 중반 한국과 중국이 벌크선과 컨테이너선 시장에서 벌인 출혈 경쟁을 떠올려보면, 가격 인하는 산업 전체를 피폐하게 만든다.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조선소가 신조선 수주가격을 인하할 경우 중국 조선업은 정부에서 후원받는 만큼 조선소들이 추가로 선가를 인하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신조선 가격이 빠르게 하락할 수 있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박수연 칼럼] 트럼프가 던진 기회, 한국 조선업 \ 골든타임\  잡아야 하는 이유선종별 한국과 중국 시장 점유율 비교(2024년) [출처: 클락슨리서치]

이런 때에 트럼프 행정부의 변수는 기회일 수 있다. 한미 정부가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명분을 공식화하면서 조선·방산업이 수십조원대의 10년급 초대형 수주 사이클을 맞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핵추진 잠수함은 척당 건조 비용이 수조원에 달하고, 최소 3척 이상을 발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미국발 LNG선과 대형 유조선 발주도 기대된다.


해법은 생산성 혁신일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생산성과 기술 투자가 이어져야 한다. 최근 조선사의 영업실적이 개선되면서 국내 조선 빅3는 상반기 동반 흑자를 기록했다. 재무적 여력이 높아진 만큼, 기술개발, 스마트야드, 품질 제고 노력 등에 중장기적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조선 빅3는 스마트야드 전환에도 본격적으로 나섰다. HD현대중공업은 '미래형 조선소(FoS)' 프로젝트를 통해 클라우드 기반 스마트야드를 구현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생산성 30% 향상, 공기 단축 30% 효과를 목표로 한다. 디지털트윈 기술로 가상 조선소에서 생산 공정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AI 분석을 통한 예측 및 최적화 기능을 더해 2030년까지 '지능형 자율운영 조선소'를 완성할 계획이다.


삼성중공업은 업계 최초로 설계 자동화 플랫폼 'S-EDP'를 구축했다. 플라마 아크 용접 대비 5배 빨라진 '레이저 고속 용접 로봇'을 개발해 LNG 화물창 공정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한화오션은 거제조선소에 약 3000억원을 투입해 드론·IoT 센서를 활용한 공정 데이터 실시간 수집 체계를 구축하고, 용접·가공 로봇을 투입해 생산 자동화율 7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스마트야드 투자는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다. 중국산 선박 대비 약 20% 높은 가격을 효율성 개선으로 상쇄하는 것이 관건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2023년 세계 최초로 암모니아 추진선을 수주했으며, 암모니아 연료 독성가스 배출량을 제로 수준으로 줄이는 친환경 기술을 독자 개발했다. 이처럼 차세대 동력원 개발에 앞장서는 것이 진정한 경쟁력이다.


◆범용선 시장 재진입...친환경·스마트 기술로 차별화할 것


한국 조선업이 직면한 가장 큰 딜레마는 고부가 전략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LNG선이 포화되는 상황에서 범용선 시장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범용선 시장 재진입을 위해서는 단순히 물량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범용선에도 고효율·스마트 기술을 접목해 차별화해야 한다. 친환경 연료 추진 컨테이너선, 디지털 트윈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 벌크선 등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범용선으로 중국과 경쟁해야 한다.


[박수연 칼럼] 트럼프가 던진 기회, 한국 조선업 \ 골든타임\  잡아야 하는 이유최근 6년 한중일 조선업 수주 점유율 추이. [자료: 한국수출입은행, 클락슨리서치]

실제로 일본 ONE이 발주한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12척을 중국이 전량 수주한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이 환경 규제에 대응한 친환경 범용선 기술을 먼저 선점한다면, 단순 저가 경쟁이 아닌 기술력 경쟁으로 게임의 룰을 바꿀 수 있다.


미국의 중국산 선박 입항 수수료 정책도 기회 요인이다. 현재 톤당 50달러의 수수료가 2028년까지 140달러로 인상될 예정이다. 중국 선박의 미국 항만 입항 비중이 40%에서 7%로 급감하면서, 한국 조선사에게는 미국 항로를 중심으로 한 범용선 시장 진출 기회가 열리고 있다.


아직 조선사들의 수주잔량은 안정적 수준이지만, 올해 상반기 국내 수주는 전년대비 약 33.5% 감소한 487만CGT, 수주액은 약 31.8% 감소한 161억 달러를 기록했다. 수주잔량에 여유가 있는 지금이 변화의 골든타임이다.


트럼프가 던진 기회는 '시간을 벌어준 기회'일 뿐, 최종 승부는 한국 조선업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가격 인하라는 독약 대신, 스마트야드로 생산성을 30% 높이고 범용선을 친환경·스마트 기술로 차별화해 미국 시장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잡아야 한다. 고부가 전략의 함정에서 벗어나 '고부가+고효율' 전략으로 전환할 때, 한국 조선업은 중국의 물량 공세를 극복하고 진정한 가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ynsooyn@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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