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회장 김승연)이 창립 74년 만에 처음으로 재계 ‘빅5’에 진입했다. 방산·조선·우주항공·친환경 에너지 중심의 사업 재편이 본격적인 결실을 맺으며, 국내 산업 지형 역시 유통·내수 중심에서 ‘K-중공업’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오션을 핵심 축으로 한 통합 방산 체계 구축, 미국 조선·태양광 시장 선점 전략, 오너 3세 중심의 독립 책임경영 체제 가속화가 맞물리며 한화의 구조적 체질 전환이 본궤도에 올랐다.
◆ 공정자산 149조원 돌파…창립 74년에 재계 5위 안착
최근 10년 (주)한화 실적과 한화그룹 연혁. [자료=더밸류뉴스]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2026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에 따르면 한화그룹의 지난해 말 기준 공정자산총액은 149조605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125조7000억원) 대비 약 19% 증가한 규모다. 이에 따라 기존 5위였던 롯데그룹(142조4200억원)과 6위 포스코그룹(140조 5840억원)을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재계 5위에 안착했다.
공정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갈등 심화로 방위산업 수요가 증가하면서 주요 방산 계열사를 보유한 한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LIG 등의 순위가 상승했다”고 밝혔다.
2026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현황. [이미지=더밸류뉴스]이번 순위 변화는 단순한 자산 증가 이상의 글로벌 산업 주도권 이동에 따른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의 결과다. 한화는 지난 10년간 정밀화학·금융 중심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방산, 조선해양, 우주항공, 친환경 에너지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대대적으로 전환해 왔다. 글로벌 지정학 리스크와 탈탄소 전환이라는 거대한 산업 흐름에 선제적으로 올라탄 결과라는 평가다.
특히 지난 2022년 이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중심의 방산 통합 전략과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가 결정적 지점이 됐다. 한화는 한화디펜스와 ㈜한화 방산 부문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일원화한 데 이어 한화오션과 한화엔진까지 품으며 육·해·공 통합 방산 체계를 구축했다.
성장세는 실적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화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74조 7474억원, 영업이익 4조156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액은 34%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무려 72% 증가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달성했다. 방산 수출 확대와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가 본격적으로 매출에 반영된 영향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오션의 합산 수주잔고는 지난해 말 약 85조원에 달해 최소 5년 이상의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확보한 상태다.
◆ 방산·조선·태양광 중심 산업 재편 결실…“K-중공업 시대” 개막
한회에어로스페이스 최근 분기별 매출액 및 영업이익률 추이. [자료=더밸류뉴스]한화의 핵심 성장 동력은 방산·조선·에너지로 요약된다. 방산 부문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지상 방산과 우주항공 역량을 통합하며 글로벌 방산 플랫폼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룹 내 우주사업 협의체 ‘스페이스 허브’를 중심으로 독자 항공엔진과 민간 우주인터넷 사업도 가속화하고 있다. 동시에,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협력해 오는 2032년 달 착륙선 발사를 목표로 우주 영토 개척에도 나서고 있다.
조선 부문에서는 한화오션이 미국 해양 시장 공략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화시스템과 한화오션은 국내 기업 최초로 미국 필라델피아의 필리(Philly) 조선소 지분 100%를 1억 달러(약 1500억원)에 인수하며 현지 생산 거점을 완벽히 확보했다. 특히, 미국과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1500억 달러(약 217조원) 규모의 초대형 한미 조선 동맹 프로젝트인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전략과 맞물려 강력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
한화오션 최근 분기별 매출액 및 영업이익률 추이. [자료=더밸류뉴스]이미 한화오션은 지난 2024년 미 해군 7함대 소속 군수지원함 '월리 쉬라(USNS Wally Schirra)'호의 창정비(MRO) 사업을 국내 최초로 수주해 성공적으로 인도했다. 정비 과정에서 추가 정비 요소를 발굴해 미 해군과 증액 수정 계약을 맺는 등 기술력을 입증해 두 자릿수 이상의 높은 수익성을 기록했다. 연이어 같은해 11월 급유함 '유콘(USNS YUKON)'호의 정기 수리 사업까지 연달아 수주하는 성과를 거뒀다. 한화오션은 이를 발판 삼아 오는 2030년까지 해외 군함 매출 4조원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친환경 에너지 부문에서는 한화솔루션 큐셀부문(한화큐셀)이 미국 조지아주에 구축한 재생에너지 통합 생산 단지인 ‘솔라 허브’가 핵심 거점으로 우뚝 섰다. 달튼 공장(5.1GW)과 카터스빌 공장(3.3GW)을 통해 연간 총 8.4GW 규모의 북미 최대 태양광 모듈 생산 체제를 완비했다.
특히 카터스빌 공장은 잉곳·웨이퍼·셀·모듈 전 과정을 현지에서 일괄 생산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세액공제 수혜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본격 가동에 따라 연간 최대 1조원 규모의 세액공제 혜택과 해외우려기관(FEOC) 리스크 회피 효과를 동시에 누릴 전망이다.
◆ 8월 인적분할로 ‘3세 독립경영’ 본격화…주주환원 강화도 병행
한화 매출액 비중. [자료=한화 2025년 사업보고서]한화그룹은 이번 재계 순위 상승과 함께 사업 효율화 및 지배구조 개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화는 이사회를 통해 방산·조선·에너지 중심의 존속법인과 테크·레저·라이프 부문을 전담할 신설 지주회사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가칭)'의 인적분할을 단행하기로 결의했다.
당초 7월 1일로 예정되었던 분할 기일은 주주환원 조치와 자기주식 소각 절차의 정교화를 위해 오는 8월 1일로 변경 공시됐다. 추가적인 자사주 소각에 따라 분할 비율은 기존의 존속 0.763 대 신설 0.237에서 존속회사 0.756 대 신설회사 0.244로 최종 변경 조정됐다. 이에 따라 주주들에게 배정되는 신설회사의 신주 배정 비율도 1주당 기존 1.182주에서 1.218주로 상향 조정돼 주주 권익이 한층 강화됐다.
시장에서도 한화의 공격적인 투자 전략을 주목하고 있다. 그룹은 방산·우주항공·조선·에너지 부문에 오는 2028년까지 총 11조원을 투자하고, 신설 지주사에도 2030년까지 4조7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다만, 대규모 설비투자(CAPEX) 부담과 글로벌 금리 변동성,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다변화는 향후 관리해 나가야 할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지정학 리스크 장기화 속 K-방산 수출 확대와 미국 제조업 재건 흐름이 한화에 더할 나위 없는 구조적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상헌 iM증권 연구원은 “이번 인적분할은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과 동시에 고유가치 재평가를 제약하던 '복합기업 할인' 현상을 해소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과거 복합기업들의 분할 성공 사례처럼, 각 사업 부문의 고유가치가 자본시장에서 독립적으로 오롯이 평가받게 된다면 향후 미국·유럽 등 글로벌 핵심 무대에서의 성과가 본격화될 때 한화의 기업 가치 재평가 역시 폭발적인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