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이 구광모 회장 체제 하에서 추진해 온 '기술 실용주의' 경영이 결실을 보고 있다. 가전과 화학 분야를 뛰어넘어 과감히 내세운 '인공지능(AI), 바이오(Bio), 클린테크(Cleantech)'를 일컫는 ‘ABC’ 전략이 영업이익과 수주 잔고로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 1분기, 전자·IT 계열사는 AI 전환(AX)과 B2B 사업 확대를 기반으로 시장 기대치를 웃도는 실적을 기록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LG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 역시 전기차 캐즘과 디스플레이 업황 둔화 속에서도 차세대 기술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며 중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 구광모 회장, '치열한 집중' 통했다...미래 성장 사업에 '50조' 투자
최근 10년 LG전자 실적 및 LG그룹 연혁. [자료=더밸류뉴스]구광모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치열한 집중’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했다. 고객이 체감할 수 있는 ‘탁월한 가치’를 완성하기 위해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수준까지 파고들 의지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오는 2028년까지 국내에만 총 100조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특히, 절반인 50조원을 AI·바이오·클린테크 등 미래 사업에 집중 투입한다.
최근 상속 분쟁 1심 승소로 지배구조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된 점도 긍정적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월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 상속 재산 재분배 소송에서 구광모 회장의 승소를 판결했다. 상속 협의가 적법하게 이뤄졌으며 선대회장의 ‘유지 메모’가 실재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배구조 리스크가 해소 돼, 장기 투자와 사업 재편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는 환경을 확보했다.
지주사 ㈜LG를 중심으로 한 밸류업 전략도 주목을 받고 있다. LG는 연내 약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고 배당 성향을 기존 대비 상향하는 주주환원 정책을 추진 중이다. 배당 성향을 기존 50%에서 60%까지 상향하고 연 2회 배당을 정례화하는 등 주주 환원을 극대화하고 있다. 자회사인 LG전자와 LG화학의 지분을 추가 매입하여 수익 구조를 강화하고, 확보된 재원을 다시 주주에게 돌려주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해 내년까지 자기자본이익률(ROE)을 8~10% 수준으로 끌어 올리겠다는 목표다.
LG 매출액 비중. [자료=LG 사업보고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점은 그룹의 조직 구조 변화다. LG전자는 전사 AI 전환을 위한 ‘AX센터’를 신설했고, 빌트인 사업을 본부급으로 격상하며 B2B 중심 체질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유플러스 역시 네트워크 지능화를 위한 ‘NW AX그룹’을 신설하며 AI 기반 통신 사업 구조 전환에 나서고 있다.
◆ 1분기, '전자·이노텍·CNS'가 끌었다...B2B·AI 전환으로 '어닝 서프라이즈'
LG전자, LG이노텍, LG CNS 매출액 비중. [자료=LG 계열사 사업보고서]
올 1분기 실적을 견인한 곳은 LG전자·LG이노텍·LG CNS 등 전자·IT 계열사다. 계열사들은 B2B 비중 확대와 기술 격차로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며 그룹의 실적을 견인하고 있다.
LG전자는 연결 기준 매출액 23조7270억원, 영업이익 1조6737억원을 기록하며 1분기 최대 매출을 경신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4.3%, 32.9% 상승했다. 구독 서비스와 webOS 플랫폼 등 고수익 사업 비중이 확대된 점이 실적을 이끌었다. 현재 B2B 사업 비중은 전체 매출의 36% 수준까지 증가했다.
무엇보다, 'AI 데이터센터 열 관리 시장'이라는 새로운 블루오션을 선점한 ‘칠러(Chiller)’ 사업이 활약했다. LG전자는 데이터센터 냉각 솔루션 수주를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렸으며, 내년 매출 1조원 목표를 조기에 달성할 전망된다. 전장(VS) 사업도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둔화에도 고부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와 전장 부품 판매가 확대돼 역대 최대 수준의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LG이노텍 역시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1분기 매출은 5조5348억원, 영업이익은 295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1.1%, 136% 증가했다. AI 서버 및 네트워크 인프라 확대에 따라 RF-SiP 등 반도체 기판 가동률이 사실상 100% 수준에 근접했다. PC·서버용 FC-BGA 공급 확대가 시작되며 비모바일 사업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에 내년까지 비모바일 사업 이익 기여도를 38% 수준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향후 멕시코 신공장을 활용한 북미 공급망 전략도 주목된다. LG이노텍은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 대응할 수 있는 생산 체계를 구축하며 북미 고객사 수주 확대 기반을 마련했다.
LG CNS는 1분기 매출 1조3150억원, 영업이익 94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6%, 19.4% 증가했다. 전체 매출의 약 58%가 AI·클라우드 사업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회사는 단순 SI(시스템통합) 기업에서 벗어나 ‘풀스택 AX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 중이다. 미국 팔란티어와의 협업을 통해 공공·금융·제조 분야 AI 전환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데이터센터 설계·구축·운영(DBO) 사업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앞서 삼송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서는 1조원 이상 규모 수주를 확보한 바 있다.
◆ '엔솔·디스플레이·유플러스'는 미는 중... 차세대 사업 '중장기 모멘텀' 가동
LG디스플레이, LG에너지솔루션, LG유플러스 매출액 비중. [자료=LG 계열사 사업보고서]
LG그룹의 중장기 경쟁력은 AI와 친환경 기술 중심의 차세대 사업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캐즘 속에서도 차세대 ‘46시리즈’ 원통형 배터리를 중심의 대규모 신규 수주를 확보했다. 올해 1분기 100GWh 이상 신규 수주를 따내며 수주 잔고는 440GWh 수준까지 확대됐다. EV(전기차) 중심 시장에서 벗어나 북미 전력망 프로젝트 중심의 ESS(에너지저장장치) 사업 비중을 전체 매출의 20% 중반까지 끌어올리며 수익성을 방어하고 있다. 연말 가동 예정인 애리조나 공장과 테네시 양극재 공장은 북미 공급망 강화의 핵심 거점이 될 전망이다. 여기에 전고체·소듐이온 배터리, 건식 공정 등 차세대 기술 투자도 병행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OLED 중심 체질 개선 효과가 본격화되고 있다. 올해 1분기 매출액 5조5340억원, 영업이익 146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9% 하락했으나, 영업이익이 338% 대폭 증가했다. 전체 매출에서 OLED 비중은 60%를 넘어섰다. 차량용 디스플레이와 IT용 고사양 OLED 출하 확대가 수익성 개선을 이끌고 있다. 광저우 LCD 공장 매각 자금 유입과 유상증자를 통해 재무 안정성을 확보하며, 2조원대 OLED 중심 설비 투자도 이어가고 있다.
LG유플러스는 AI 데이터센터(AIDC)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육성 중이다. 올해 1분기 매출액 3조8037억원, 영업이익 272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5%, 6.6% 증가했다. 특히 AIDC 매출이 31% 성장했다. 자체 소형언어모델(sLLM) ‘익시젠(ixi-GEN)’을 기반으로 한 AI 통화 에이전트 ‘익시오’를 출시하고, 2027년 준공 예정인 수도권 최대 규모의 ‘파주 AIDC’를 그룹 AI 인프라 핵심 거점으로 육성하고 있다. 파주 AIDC는 약 200MW 규모로 GPU 12만장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AI 데이터센터로 알려졌다.
LG는 제조·로봇·통신·에너지 산업과 결합한 ‘피지컬 AI’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바이오·클린테크를 타깃으로 한 구광모식 ‘선택과 집중’ 전략이 단순 청사진에 그치지 않고 실적과 수주, 조직·사업 구조 변화로 연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