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유통기업 신세계그룹이 기존 소매업의 틀을 깨고 AI 기업으로의 DNA 전환을 선언했다. 미국 AI 스타트업과 협업해 데이터센터 건립을 추진하며 ‘이마트 2.0’ 시대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신세계는 AI 에이전트 커머스를 구현하고 물류 혁신을 이뤄 유통업의 본질적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동시에 이번 사업의 성공이 SSG닷컴과 G마켓 등 이커머스 부문의 적자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지에 대해서도 기대하고 있다.
◆ '미국 AI 수출 프로그램 1호'... 신세계X리플렉션AI 초대형 데이터센터 건립
정용진(오른쪽) 신세계그룹 회장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내셔널 AI 센터'에서 열린 '한국 소버린 AI 팩토리 건립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 협약식'에서 미샤 라스킨(왼쪽) 리플렉션AI CEO,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신세계]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내셔널 AI 센터'에서 AI 스타트업 리플렉션AI와 '한국 소버린(주권) AI 팩토리 건립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 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신세계는 국내 최대 규모인 250㎿(메가와트)급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
‘소버린 AI’는 국가나 기업이 자체 데이터 인프라와 컴퓨팅 자원을 보유해 데이터 주권을 지키는 인공지능 모델을 뜻한다. 신세계가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건립하면 방대한 유통 데이터를 외부 유출 없이 내재화하고 이를 독자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승화시키게 된다.
이번 사업은 정 회장의 ‘패러다임 시프트’로 보인다. 정 회장은 파트너십을 맺은 날 "AI는 미래 산업과 경제, 인간의 삶 등 모든 분야를 총체적으로 변화시켜 AI 없는 미래 산업은 생존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데이터센터 건립 협업 프로젝트는 신세계의 미래 성장 기반에 토대가 되고 국내 산업 전반의 AI 생태계 고도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유통업은 입지와 물건의 종류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고객의 구매 패턴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데이터 장악력’으로 승부를 보는 시대가 됐다. 이번 파트너십이 신세계가 글로벌 수준의 AI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국내 시장에 최적화된 형태로 구현해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 이마트 2.0의 심장 ‘AI 풀 스택’ 구축... 초유통 전략 시동
데이터센터 건립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마트 2.0’의 완성이다. ‘이마트 2.0’은 오프라인 매장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전 과정에 디지털 기술을 이식해 새로운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초유통 전략이다.
신세계는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리테일 AI 풀 스택’을 구축할 계획이다. AI 풀 스택은 하드웨어 인프라, 소프트웨어, 서비스 모델까지 전 과정을 통합해 최적의 성능을 내는 구조를 말한다. 이를 유통업에 적용하면 재고 관리, 수요 예측, 물류 효율화 등 운영 전반을 고도화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데이터센터의 연산 능력을 활용해 라스트 마일(유통센터에서 고객 집 앞까지) 배송경로를 최적화하고 수요 예측을 통해 재고 관리의 정확도를 극대화한다. 또 매장 진열과 신선식품 폐기 관리를 AI가 전담해 인건비와 손실률을 낮춘다. 더 나아가 ‘AI 에이전트 커머스’를 구현해 고객이 무엇을 살지 고민하기 전에 AI가 취향과 니즈를 파악해 제안하고 결제까지 돕는다.
결국 데이터센터는 ‘이마트 2.0’을 실현시키는 연료이자 심장부 역할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신세계는 ‘물건 판매자’에서 ‘라이프스타일 데이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
◆ 유통업을 살리기 위한 ‘탈(脫)유통’… AI로 이커머스 마진 구조 뜯어고친다
이번 신사업은 부진한 본업을 커버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신세계가 운영하는 SSG닷컴과 G마켓이 수년간 영업적자를 이어가며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SSG닷컴 매출액, 영업이익률 추이. [자료=더밸류뉴스]
SSG닷컴은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영업적자가 이어졌다. 지난해 -1178억원으로 5년 중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G마켓 매출액, 영업이익률 추이. [자료=더밸류뉴스]
G마켓도 16년간 연속 흑자를 내다가 2021년 11월 신세계에 인수된 후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834억원으로 인수 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매출액도 양사 모두 감소하고 있다.
양사의 실적 부진은 사업 구조와 경쟁 과열 때문으로 보인다. SSG닷컴은 2014년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각각의 온라인몰을 통합한 플랫폼이라서 대형마트 기반 배송 의존도가 높다. 하지만 대형마트는 유통법에 의한 영업 규제 때문에 몇 년째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다. G마켓은 코로나 시기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쿠팡과 네이버가 장악하고 신선식품 새벽배송에 특화된 컬리, 오아시스와 패션 플랫폼 무신사가 성장하며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알리, 테무 등 중국계 이커머스도 들어오며 G마켓의 입지는 더 작아졌다.
신세계는 기존 방식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 ‘탈유통’을 선택했다. AI 인프라 사업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활용해 유통업의 낮은 마진 구조를 보완하는 것이다. 먼저 Ai를 통해 마케팅 비용을 효율화하고 구매 전환율을 높여 SSG닷컴과 G마켓의 적자 폭을 줄일 수 있다. 또 타 기업에 클라우드 서비스나 AI 솔루션을 제공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도 시도할 수 있다. 끝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물류비를 절감해 이커머스 사업부의 턴어라운드를 앞당길 수 있다.
신세계의 데이터센터 건립은 본업 경쟁력을 AI로 재정의하고 적자 늪에 빠진 이커머스 사업을 기술 중심의 흑자 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강력한 승부수다. 이번 사업이 안착한다면 신세계는 단순 유통 기업을 넘어 한국의 AI 주권을 책임지는 핵심 IT 플레이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