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30일 오전 9시 긴급 이사회를 열고 경영권 방어를 위한 대책을 논의한다. 최윤범 회장은 이사진에게 구체적인 안건을 사전 공유하지 않은 채 '경영권 분쟁 관련 사안'이라는 설명만 덧붙였다. 공개매수 종료 후 의결권 기준 지분율에서 MBK-영풍 연합(43.87%)에 뒤처진 최윤범 회장 측(40.34%)은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새로운 전략 모색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앞서 29일 고려아연은 반도체 황산 품질 저하에 대한 주요 고객사들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영풍 측은 "고려아연 공장 내 정전사고로 인한 일시적 문제일 뿐"이라며 "경영권 분쟁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정면으로 반박, 공개매수 종료 후 여론전이 더 치열해지는 양상이다.영풍그룹 현황과 지배구조. 2024. 9. 단위 %.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고려아연 자사주 1.4% 우리사주행 처분 카드 주목...의결권 격차 좁히기 승부수
이날 이사회의 최대 관심사는 고려아연이 보유한 자사주 처분 여부다. 고려아연은 현재 신탁계약을 통해 총 2.41%(49만9696주)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지난 5월 취득한 1.4%(28만9703주)의 신탁계약이 11월 8일 만료를 앞두고 있어, 이를 우리사주조합에 넘겨 의결권을 확보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사주가 의결권을 회복할 경우 최윤범 회장 측의 의결권 비율은 현재 40.34%에서 41.28%로 상승하게 된다. 이는 MBK-영풍 연합과의 격차를 3.53%포인트에서 1.9%포인트로 좁히는 효과가 있다. 향후 예상되는 임시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약 4%)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의 표심이 결정적인 상황에서, 이 정도의 격차 축소는 경영권 향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법적 리스크를 동반한다. MBK 측은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며,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우리사주조합을 활용한 의결권 확보는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고려아연이 지난 5월 해당 자사주 취득 시 '주식 소각 및 임직원 평가보상'을 목적으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이를 경영권 방어에 활용하는 것은 당초 취지를 벗어난다는 지적이다.
한편 이사회에서는 영풍·MBK 측이 요구한 임시주주총회 소집 청구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전망이다. 이사회가 이를 거부할 경우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하며, 이 경우 임시주총은 연말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고려아연 최씨 오너 가계도와 지분 현황. 2024. 10. [자료=더밸류뉴스]
◆삼성·SK 황산 공급 95% 차지하는 고려아연, 품질 논란 배경에 관심 ↑
고려아연은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반도체 황산 주요 고객사들이 품질 유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지속해 내고 있다"며 경영권 분쟁이 실제 사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연간 140만톤의 황산을 생산하는 온산제련소는 국내 반도체 황산 공급의 65%를 담당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체 물량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일부 고객사가 "황산 품질 미세변동으로도 공정 산포가 흔들린다"는 우려를 표명했다는 것이 고려아연 측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영풍 측은 "10월 중순 고려아연 공장 내 정전사고로 인한 일시적 품질 저하에 대해 고객사가 통상적인 수준의 품질 유지 요청을 한 것"이며 "이를 경영권 분쟁과 연결 짓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고려아연 측은 관련 사실 확인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이러한 공방은 향후 주주들의 지지 확보를 위한 여론전의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 고려아연은 반도체 산업의 핵심 소재 공급사로서의 위상과 안정적 경영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는 반면, 영풍·MBK 측은 현 경영진이 회사의 실수를 경영권 분쟁으로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영풍그룹 장씨 오너 가계도와 지분 현황. [자료=더밸류뉴스]
◆MBK-영풍과 고려아연 향후 이사회 결정 및 지배구조 개선 관전 포인트
공개매수 종료 이후 양측의 지분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가운데, 영풍·MBK 연합은 지난 28일 이미 신규 이사 14명 선임과 집행임원제 도입을 위한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이는 단순한 이사진 교체를 넘어 고려아연의 지배구조 개편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집행임원제 도입은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경영 투명성을 제고하는 방안으로, 삼성전자나 SK이노베이션 등 주요 기업들이 채택한 선진 지배구조 모델이다.
현재 고려아연 정관상 이사 선임에 제한이 없어, MBK-영풍 연합은 사외이사 12명과 기타비상무이사 2명의 선임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이사진 교체를 위해서는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필요해 66% 이상의 찬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양측 모두에게 쉽지 않은 과제로, 향후 우호 세력 확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업계에서는 양측의 지분 격차가 좁혀질 경우 장기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경우 신사업 투자 지연과 경영 의사결정 지체로 인한 기업가치 훼손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고려아연이 추진 중인 이차전지 소재, 자원순환 사업과 반도체 핵심 소재 공급 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향후 몇 가지 핵심 변수가 주목된다. 첫째, 30일 이사회에서 고려아연이 자사주 처분이라는 카드를 실제로 사용할지 여부다. 둘째, 영풍·MBK 연합이 요구한 임시주총 소집 요청에 대해 현 이사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도 관전 포인트다. 이사회가 이를 거부할 경우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하며, 이는 경영권 분쟁의 장기화로 이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움직임이다. 특히 고려아연의 ESG 경영과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관점에서 집행임원제 도입을 둘러싼 기관투자자들의 판단이 경영권 분쟁의 향방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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