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회장 최윤범)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극한 대결로 치닫고 있다. 고려아연이 기자회견을 갖고 MBK 파트너스(회장 김병주. 이하 'MBK')를 투기세력으로 규정하자 MBK는 "고려아연 경영권을 확보해도 신사업 중단이나 중국에 매각은 없다”는 입장을 다시 밝혔다.
◆고려아연, "MBK의 경영권 탈취 시도는 약탈적 행위. 고려아연은 영풍 폐기물 처리장"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최고기술책임자·CTO)은 24일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 고려아연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MBK파트너스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은 부당하며, 피와 땀으로 일궈온 고려아연을 지킬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제중 부회장은 지난 1984년 대학 졸업 뒤 고려아연에 입사해 온산제련소장 겸 기술연구소장,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이 부회장은 "불모지와 다름없던 대한민국에서 오로지 우리의 기술과 열정으로 세계 최고의 비철금속 기업으로 우뚝 섰다"며 "그런데 지금 MBK파트너스라는 투기자본이 중국 자본을 등에 업고 고려아연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의 기술과 미래, 나라의 미래는 안중에 없고 오직 돈뿐"이라고 비판하면서 "절대로 이런 약탈적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장형진 영풍 고문과 관련, "영풍 석포제련소의 경영 실패로 환경 오염과 중대 재해를 일으켜 국민에게 빚을 졌으면서도 이제 와 기업사냥꾼과 손잡고 고려아연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장 고문이 영풍 석포제련소의 폐기물 보관장에 있는 카드뮴 등 유해 폐기물을 고려아연에 떠넘겨 고려아연을 영풍의 폐기물 처리장으로 만들려고 해왔다"며 폭로성 주장도 내놨다. 그는 "영풍 경영진이 매년 고려아연으로부터 막대한 배당금을 받아 고려아연 주식 매입에만 집중할 뿐 영풍 석포제련소를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과 투자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고려아연 기술 관련 직원들이 함께 참석했다.
이제중 부회장은 “영풍은 그동안 석포제련소의 폐기물 보관장에 있는 유해폐기물(자로싸이트 케이크(Cake), 카드뮴 등)을 고려아연에 떠넘겨 고려아연을 영풍의 폐기물 처리장으로 만들려 해왔다. 온산제련소를 영풍의 폐기물처리 공장으로 만들 수 없다. 이걸 막은 사람이 최윤범 회장이다. 그때부터 영풍 측과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MBK, "공개 매수는 1대주주와 협력 진행, 중국 기업에 팔지 않을 것"
MBK도 이날 ‘고려아연 임직원, 노동조합, 고객사, 협력업체, 주주, 지역사회,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든 구성원께 올리는 글’이란 제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MBK는 입장문에서 “우리가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보하게 되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신성장 사업들이 모두 중단될 것 같이 호도하고 있다”며 “이익에만 집중해 제품 품질을 저하할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협력업체들과의 관계도 중단될 것으로 넘겨짚고 있다”며 “핵심 기술이 유출되고, 심지어 인수 후에는 중국에 매각될 것 같이 말하고 있다. 근거없는 억측이며, 현실성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MBK는 이번 공개매수가 고려아연의 1대 주주와의 협력하에 진행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MBK는 “적대적 인수합병은 잘못된 주장”이라며 “최대주주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이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개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MBK는 고려아연을 중국에 매각하는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MBK는 “고려아연은 국가기간산업”이라면서 “우리는 장기간 투자하고, 대한민국의 구성원들이 수긍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리고 대한민국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투자 활동을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MBK는 이후 추가 입장문을 내고 고려아연의 ‘최윤범 회장이 지금 답해야 할 질문들’ 여덟 가지를 언급하며 압박했다. 입장문에서 MBK는 고려아연의 영업 이익률 하락 이유와 원아시아파트너스 펀드들에 대한 출자 과정 등을 물으며 대표이사인 최윤범 회장의 책임을 추궁했다. 또한 자사주 취득이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 수단은 아닌지, 고려아연 관련 인테리어 공사를 도맡다시피 한 씨에스디자인그룹의 관계를 물었다. MBK측은 “고려아연의 원아시아파트너스 투자 대비 총 손실액은 2024년 6월 말 기준 1378억원(-24.8%)으로 추정된다”며 현 경영진의 투자 결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 “완전자본 잠식 상태인 이그니오 홀딩스를 약 5800억원(21년 매출액 29억원 대비 200배 이상)의 거금으로 인수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영풍,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을 사적 장악 시도하면서 관계 틀어져"
이날 고려아연 기자회견 직후 영풍도 보도자료를 내고 "고려아연이 기자회견에서 영풍과 자로사이트 케이크와 카드뮴 케이크 등 폐기물 처리를 고려아연에 떠넘기려 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풍은 "자로사이트는 과거 영풍과 고려아연이 사용했던 아연 제련 공법의 명칭이다. 이 공법을 통해 아연을 생산하고 남은 최종 잔재물이 자로사이트 케이크다. 현재는 양사 모두 공법을 변경하여 더는 자로사이트 케이크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자로사이트 케이크에는 일부 아연 및 금속 성분이 남아있어 재처리를 통해 금속 성분을 더 추출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이에 몇 년 전 고려아연과 자로사이트 케이크 처리 방안에 대해 협의한 적은 있으나 최종적으로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영풍은 "오히려 과거에 고려아연의 호주 계열사인 SMC에서 발생한 아연 잔재물인 컨벤셔널 케이크를 SMC가 자체적으로 처리하지 못해 고려아연으로 가져와 처리하면서 일부 물량을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받아 처리해준 적도 있다"고 밝혔다.
영풍은 "영풍과 고려아연의 관계가 틀어진 본질적인 이유는 최윤범 회장 본인에게 있다"며 "최 회장은 2019년 대표이사 취임 이후 주주들의 이익을 앞세우기보다 고려아연을 사적으로 장악하고자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영풍은 최윤범 회장에 대해 제기된 △원아시아파트너스 운용 사모펀드 투자 관련 배임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관여 △이그니오홀딩스 투자 관련 선관주의 의무 위반 △이사회 결의 없는 지급보증 관련 상법 위반 △일감 몰아주기 등 다수의 의혹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기 위해 회계장부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영풍은 "최 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 고려아연은 2022년 8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한화와 현대차 그룹 등에 잇달아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및 자사주 상호 교환 등으로 무려 16% 상당의 지분가치를 희석시키면서 기존 주주들의 비례적 이익을 침해했다"며 "영풍은 고려아연 최대주주로서 고려아연의 경영권 강화 및 경영 정상화를 위해 토종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협력해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에 나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