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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미국 오마하에서 직접 만난 '워렌 버핏의 평생 동반자' 찰스 멍거는?

  • 기사등록 2016-02-06 17: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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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이민주 언론인]

워렌 버핏을 지금의 성공 투자가로 만든 뒤안길에는 찰스 멍거(Charles Munger)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이 있다. 찰스 멍거 부회장을 빼놓고는 버핏의 성공을 설명하기 어렵다. 


멍거 부회장은 버핏과 마찬가지로 오마하 태생이다. 미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버핏의 권유로 투자의 세계에 입문했다. 그는 버핏이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릴 때 적절한 조언을 해주고 있고, 버핏의 멍거의 조언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2007년 5월, 미국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서 버크셔 해더웨이 주주 총회를 취재하면서 주주들 사이에 찰스 멍거가 워렌 버핏 못지 않게 관심의 초점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주 총회 첫째날 퀘스트센터 1층에서는 책 판매 코너가 운영되고 있었는데, 워렌 버핏의 가치투자와 버크셔 해더웨이에 관해 쓰여진 책, CD, DVD 등이 판매되고 있었다. 이 코너의 여기저기를 뒤적거리다가 찾아낸 게 찰스 멍거의 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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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아마존]


아주 두툼한 책이었고 책장을 넘겨보니 찰스 멍거의 성장 과정과 현재의 투자가로 자리를 잡기까지 겪었던 일들이 컬러 사진과 함께 나와 있었다(일부에서는 찰리 멍거(Charlie Munger)라고 표기하는데, 보다시피 전기에 Charles T. Munger 라고 표기돼 있다. Charlie는 Charles의 애칭이다)

책을 뒤적이고 있었더니 어느 백인 남자가 불쑥 다가와 "만약 내가 이 코너에서 책을 딱 한 권만 고른다면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이 책을 집어들겠다"고 말했다. 내가 먼저 묻지도 않았는데 이 남자가 먼저 다가 와서 말을 거는 것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는 "찰스 멍거야 말로 투자란 게 뭔지를 진정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며 "그의 정신의 격자 세공 모델은 투자가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찰스 멍거가 주주들에게 존경받고 신뢰감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다. 다음날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사진을 같이 찍었다. 아래 사진의 왼쪽이 찰스 멍거, 오른쪽이 워렌 버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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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찰스 멍거 부회장, 필자 이민주, 워렌 버핏 회장. [사진=버핏연구소]

 

멍거는 1924년생이니까 당시 나이가 86세였는데, 정말 건강해보였고 키는 얼추 190cm가 되는 것 같았다.  사진을 찍기 위해 나란히 포즈를 취하는 과정에서 찰스 멍거가 영광스럽게도 나에게 반갑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가 이런 제스처를 한 것은 기자회견장에서 제가 던진 질문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자회견장에서 워렌 버핏에게  "당신의 가치투자가 한국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했는데, 이때 찰스 멍거가 워렌 버핏의 답변이 끝나자 워렌 버핏으로부터 마이크를 넘겨 받아 자신의 의견을 제법 길게 밝혔다. 찰스 멍거는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답변을 아주 드물게 했는데, 저의 질문에 대해서는 제법 길게 답변했다. 이때 한국 전쟁, 정주영 회장, 박정희 전 대통령, 한강의 기적 같은 말들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한국인들을 자주 접했고 이 때문에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이 오랫동안 분단 국가로 지내온 것이 가슴 아프지만 자부심을 가질만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인물입니다. 그는 자동차, 조선 등 한국의 기업사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그가 일으킨 조선업은 일본을 제쳤습니다. 한국인은 스스로 이룩해놓은 것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또, 그는 기자회견이 끝난 후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신세계는 위대한 기업"이라고 밝혔다. 저는 곧바로 기사를 전송했고 다음날 저희 신문에 기사로 실렸다. 


찰스 멍거의 책의 제목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불쌍한 찰리의 인생'쯤이 될 것이다. 재산이 우리 돈으로 2조원이 넘는 분이 스스로를 불쌍한 인생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해봤다. 겸손함의 표현일까 아니면 정말로 자신의 인생을 시원치 않다고 생각하는걸까(찰스 멍거는 버크셔 해더웨이 주식 1만 5,181주를 갖고 있다. 이것만 돈으로 환산해도 대충 1조 5,000억원이다)

나는 이것을 버크셔 해더웨이에서의 그의 2인자의 역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막연하게 추측해본다.
찰스 멍거는 경력이나 지적인 능력에서 워렌 버핏에게 뒤지지 않는 인물이다.



찰스 멍거는 누구?

▷ 이름 : Charles Thomas Miunger
▷ 생일 : 1924년 1월 1일 미국 네브라스카주 오마하 출생
▷ 경력 : 미 미시간대,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법학 박사). 법률회사 Munger, Tolles& Olson LLP에서 변호사로 활동
▷ 순재산 : 16억 달러(약 1조 6,000억원)
▷ 직함 : 버크셔 해더웨이 부회장, 웨스코 파이낸셜 회장



일부 주주들이나 투자 전문가들은 찰스 멍거의 투자방법을 오히려 깊게 연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찰스 멍거는 버크셔 해더웨이에서 워렌 버핏의 뒤에 가린 2인자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찰스 멍거는 버크셔 해더웨이가 주최하는 행사나 이벤트에서 워렌 버핏과 나란히 앉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워렌 버핏에게 쏟아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독자 분이 찰스 멍거라면 이같은 상황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우리 속담에 "닭의 머리가 될 지언정 용의 꼬리는 되지 않겠다"는 게 있는데 누구나 한번쯤 이 속담의 의미를 실감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직업이 그렇다 보니 한국의 기업들이나 기관들을 자주 취재하게 되는데, 능력이 뛰어난 두 사람이 한 조직에서 공존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한다. 자존심, 스스로를 남과 다른 무엇으로 느끼는 것, 경쟁 의식 등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뿌리박힌 본능이다.

그럼에도 찰스 멍거가 2인자의 인생을 받아들인 것은 워렌 버핏의 능력이 아닌가 한다. 버크셔 해더웨이 행사가 열리면 버핏은 멍거에게 답변을 부탁하는 등 멍거를 항상 배려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고 보면 버핏은 돈을 다루는 능력 못지 않게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외신을 보니 멍거가 최근 버크셔 해더웨이에서 워렌 버핏과 자신의 관계를 아인슈타인과 동료와의 관계에 비유해 표현하고 있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동료들과 완전히 고립돼 지냈다면 그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아주 많은 동료들과 접촉할 필요는 없었지만, 소수의 몇 사람과는 접촉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바로 소수의 몇 사람이다. 사실상 어느 누구도 완벽한 고립의 세계에서는 성과를 낼 수 없는 법이다."

멍거는 1959년 미국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서 워렌 버핏을 처음 만났다. 당시 워렌 버핏은 뉴욕 생활을 마치고 귀향해 투자자들을 모집하고 있었고, 멍거는 LA에서 변호사로 일하다가 오마하에 머무르고 있었다. 둘 다 오마하 태생이지만 이전까지는 서로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서부터 의기투합했고 지금까지 평생의 동반자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멍거는 바다를 좋아한다. 취미를 배스 낚시와 뗏목 타기라고 밝히고 있다. 최근에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렸다고 한. 두번째 부인 낸시와 50년 넘게 해로하고 있고 8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멍거와 같은 인물을 자신의 곁에 두는 능력도 투자가로서, 삶의 여정에서 성공하는 조건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민주 언론인] 


hankook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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