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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이지윤 기자]

서울 도심 한복판의 첨단 빌딩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중구 남대문로.


이곳 삭막한 첨단 빌딩 숲을 걷다 보면 문득 단촐한 붉은색 2층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한눈에 봐도 '오래됐다'는 느낌을 주는데, 주변 첨단 빌딩 숲과 강렬하게 대비되면서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건물 이름은 '광통관(廣通館)'. 


1909년 완공됐으니 올해로 113세이다. 은행 건물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됐다. '광통'이란 이름은 근처에 광통교가 있어 붙여졌다. 완공 직후 대한천일은행(현 우리은행) 본점으로 쓰였고 현재는 우리은행 종로금융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 중구 우리은행 종로금융센터(광통관). [사진=더밸류뉴스]

◇ 우리은행 광통관은...


▷위치 :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 118. 2층. ▷시기 : 1908년(융희 2년) 공사 시작. 1909년(융희 3년) 5월 완공. ▷설립 주체 : 대한제국 탁지부. ▷설립목적 : 조선상권 보호 및 민족 금융수호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이 건물이 왜 남다른 '아우라'를 풍기는 지가 이해된다. 


광통관은 전체적으로 고대 그리스 신전 분위기를 갖고 있는데, 재질은 화강암이며, 화강암들 사이에 붉은 벽돌을 배치했다. 건물 기둥은 바로크풍의 돔(dome) 형태이고, 기둥 끝부분의 주두(柱頭)는 그리스 신전에 나오는 이오니아식 형태를 갖고 있다. 건물 이곳저곳에는 반원 형태의 페디먼트(파르테논 신전) 장식도 보인다. 1900년대의 건축 기술로 지어진 건물임에도 미적 완성도에 대단히 신경썼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품격과 자태를 풍기는 것이다. 


서울 중구 우리은행 종로금융센터(광통관). [사진=더밸류뉴스]

광통교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면 타임머신을 타고 '모던 경성'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1900년대 무렵의 광통관 일대 사진들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 중구 우리은행 종로금융센터(광통관) 내부. [사진=더밸류뉴스]

그러다가 365일 코너와 ATM기기가 눈에 들어온다. 현재 광통교가 우리은행 지점(종로금융센터)로 쓰이다보니 이런 기기들이 있다. 이들 기기는 여느 은행 지점에서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지만 사각 모양의 테두리를 가진 고풍스러운 목재 캐비넷에 모셔져 있다. 고전 영화에서 귀부인 저택에 전화기가 황금 상자에 모셔져 있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서울 중구 우리은행 종로금융센터(광통관) 내부 ATM기기. [사진=더밸류뉴스]

일제강점기에 이 일대에는 당대의 금융·상업 핵심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를 읽다 보면 주인공 구보가 이 일대를 걸으면서 1930년대 '모던 경성'을 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구체적으로, 그 시절 서울 종로에서 남대문로를 걷다보면 화신상회(화신백화점)→동일은행→한성은행→광통관→미츠코시 백화점을 마주칠 수 있었다. 광통관은 여기에 포함돼 '모던 경성'을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였다.


눈길 끄는 것은 고종황제 동상이다. 은행 건물에 웬 고종 황제 동상이냐 싶지만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광통관은 1909년 완공과 동시에 대한천일은행 본점 건물로 사용됐는데, 대한천일은행은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의 경제 근대화와 금융지주화를 위해 민족자본으로 설립한 국내 최초의 은행이었다. 


대한천일은행은 일제의 금융 침탈에 저항하는 금융의 전초 기지 역할을 수행했다. 1907년부터 시작된 국채 보상 운동의 중심이었으며 독립 운동 자금을 관리하기도 했다. 1919년 3.1 운동이 대한천일은행의 본점 앞에서 열린 것도 그만큼 상징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1910년 한일합방으로 국권이 상실되자 1912년 2월 대한천일은행은 상호에서 '대한'을 빼고 조선상업은행으로 개칭됐다. 1950년에 다시 한국상업은행이 됐고, 1999년 한일은행과 합병해 한빛은행이 됐다. 한빛은행은 2001년 우리금융지주에 편입되면서 파란만장한 역사를 일단락하게 된다. 


서울 중구 우리은행 종로금융센터 내부 액자 사진 속 옛 광통관 모습. [사진=더밸류뉴스]

광통관은 1959년 3월 21일에 한국 최초의 여성 전용 금고인 '숙녀금고'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숙녀금고는 당시 사회진출과 경제활동이 어려웠던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돕기 위해 만든 금고로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여성만을 위한 은행 영업점이었다.


서울 중구 우리은행 광통관. 뒷배경의 최신식 건물들과 대비를 이루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광통관은 1914년 화재가 발생했고 복구 과정에서 일부 장식, 창문, 돔 형태 등이 변형됐다. 2002년 서울시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됐다. 


jiyoun6024@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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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3-29 22: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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