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그 의미를 시장과 공유하는 것, 그것이 신용평가사의 역할입니다."
지난 17일 서울시 영등포구 한국거래소 컨퍼런스 홀에서 열린 '나이스 크레디트 세미나 2025(NICE CREDIT SEMINAR 2025)'에서 안영복 NICE신용평가 대표이사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변화된 통상환경, 새로운 경쟁환경에 처한 한국산업'을 주제로 해외 기업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 대표 기업들의 경쟁력과 대응력을 검토했다.
17일 서울시 영등포구 한국거래소 컨퍼런스 홀에서 열린 '나이스 크레디트 세미나 2025(NICE CREDIT SEMINAR 2025'에서 안영복 NICE신용평가 대표이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영상=더밸류뉴스]
미국발 25% 관세 이후 업계 전반의 비용·투자 부담이 커졌지만, 현대차그룹은 선진국 중심의 판매 구조와 SUV·제네시스 등 고마진 차종 비중 확대, 북미 현지 생산 증설을 통해 충격을 흡수할 여력이 크다고 평가했다.
팬데믹 이후 글로벌 완성차 판매 증가율이 둔화하는데도 현대차그룹이 중국 부진을 미국·인도 판매 확대로 보완하며 수익성이 높은 시장 비중을 키웠고, 미국 점유율을 2017년 7.2%에서 2025년 상반기 10.7%로 끌어올렸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관세 부과로 2025년 상반기 회사별 1조5000억~2조 원 규모의 추가 비용이 발생해 영업수익성이 하락했지만 현대차그룹은 하이브리드에서의 수익성과 선진국 중심 판매 믹스로 상대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판매 수입 비중이 약 60%로 높은 편이어서(도요타 48%, GM 27%, 폭스바겐 82%) 관세 노출도는 상대적으로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나이스 신용평가원은 조지아 '메타플랜트' 램프업이 진행되면 관세 대상 판매 비중이 약 58%에서 40% 수준으로 낮아져 관세 충격이 점진적으로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요 자동차 회사 부채비율 및 순현금성자산 비교. [자료=나이스신용평가]
재무 측면에서는 현대차·기아차 합산 순현금성 자산이 약 30조원, 부채비율이 60% 내외로 양호해, 전동화·현지화 투자 확대에 따른 현금흐름 부담을 흡수할 방파제가 마련돼 있다고 평가했다. 향후 변수로는 관세율 인하 합의의 실제 적용 시점과 국가별 차등 적용 여부가 제시됐으며, 인하 지연 또는 경쟁국 선적용 시 미국 시장 특성상 가격 전가가 제한돼 단기 수익성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차 신용평가 시사점 종합. [자료=나이스신용평가원]
그럼에도 나이스신용평가원은 선진국 중심의 판매 구성, 고마진, 북미 생산기반 확대, 충분한 유동성을 근거로 현대차그룹의 신용도 영향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2021년 이후 중국 내수 부진으로 철강사가 감산 대신 수출을 늘리며 저가 물량이 확대됐고, 이에 따라 한·중·일 역내 수급이 악화됐다고 밝혔다.
국가별 철강제품 관련 무역장벽 현황. [자료=나이스신용평가]
미국은 트럼프 2기 출범 후 무관세·쿼터를 폐지하고 25%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6월 50%로 상향하며 가동률이 반등하고 수입이 감소하는 흐름을 보였다고 전했다. 아세안의 반덤핑 강화와 EU의 CBAM(탄소국경조정제도; 2026년 전면 시행 예정)까지 더해져 세 나라가 동일한 아시아 시장에 수출을 집중하는 구조에서 가격 압박이 커졌고, 국내에선 열연·후판 등 범용재 수입 증가로 내수도 부담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회사별로는 바오우그룹이 글로벌 1위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규모의 우위를 확보했고, 일본제철은 해외 상공정(원재료 가공해 중간단계 제품을 만드는 공정) 기지 확보에서, 포스코는 고부가 포트폴리오에서 강점을 보인다고 평가했다.
다만 수급 부담과 수출 제약이 지속되는 환경에서는 상공정사의 이익 회복 속도가 제한적이며, 해외 투자 확대에 따른 재무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재무적 완충력이 약한 하공정(최종제품 만드는 공정) 회사를 중심으로 신용등급 하방 압력이 확대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과잉설비가 누적된 상황에서 미·EU가 고율 관세와 보조금 요건을 통해 공급망을 중국과 분리하는 추세지만, 한국 2차전지 업종의 단기 실적 개선은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중국 배터리 생산능력(CAPA)이 2024년 2TWh를 넘어서며 내수 수요를 크게 상회했고, 잉여 물량은 수출로 전환돼 글로벌 가격 압박을 키우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고 밝혔다. 미국은 EV·배터리 관세율을 대폭 상향하고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수혜 조건에 ‘중국산 원자재 비중 제한’을 추가했으며, 유럽도 최대 45% 수준의 관세를 적용하며 비중국산 프리미엄을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쟁 구도와 관련해선 중국 업체들이 낮은 전력·노무비, 높은 밸류체인 통합도를 바탕으로 미국·EU 대비 30~40% 낮은 제조원가를 확보해 수익성 우위를 유지하는 반면, 보조금 축소로 가격 민감도가 높아진 시장에서 리튬인산철(LFP) 채택이 확대되며 중국의 저가 포트폴리오가 소형 EV 중심으로 점유율을 넓히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기업은 북미·유럽에 선제적으로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완성차와 JV를 통해 안정적 수주 기반을 확보해 AMPC 수혜 또한 확대되고 있으나, 포트폴리오가 중·대형차 위주여서 소형 EV가 주도하는 수요 변화에 즉각 대응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무 측면에서는 한국 셀·소재사의 차입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중국 대형사의 매입채무 회전기간(200일+) 등 영업성 부채 활용을 감안하면 양측의 실질 부담은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다만 중국의 매입채무 결제기한 단축(법제화) 등 제도 변화가 현실화되면 중국 기업의 유동성 관리 여지는 축소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주요 2차전지 기업 신용도 추이. [자료=나이스신용평가]신용평가 시사점으로 NICE신평은 비우호적 수급과 가격 압박 속에서 한국 기업의 가동률 제고가 제한되는 가운데, 저가 솔루션 확보와 납품 차종 다각화가 이익 안정화의 관건이라고 밝혔다. 대기업 계열사는 자본성 조달로 방어 여력이 있으나, 비계열·중소형사는 채무성 조달 증가로 등급 하방 압력이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투자 부담이 완화되는 국면에서도 이익 창출력으로 레버리지 조정에 성공하지 못하면 신용도 하락 가능성이 남는다고 강조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에틸렌·프로필렌 대규모 증설로 아시아 역내 공급과잉이 심화되면서 한국 석유화학 업황과 수익성이 구조적으로 악화됐다고 밝혔다. 한국산 정유·화학 제품의 미국 관세 면제에도 불구하고, 중국 수출 부진이 심화될 경우 한국의 수출과 마진이 간접적으로 제약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북아 원료 도입 경쟁력 비교. [자료=나이스신용평가]
국제 비교에서는 중국이 러시아산 등 저가 원료·대형 설비·수직일관 체계를 바탕으로 원가·설비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는 반면, 한국은 납사 기반 NCC 비중이 높아 비용 민감도가 크고, 주력 수출시장인 중국의 자급률 상승으로 판로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스페셜티 중심 포트폴리오 전환으로 수익성을 방어해 한국과의 ‘수익성 디커플링’이 진행 중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와 국내 10개 NCC 기업이 최대 370만 톤(국내 설비의 약 25%) 감축을 목표로 자율협약을 체결하는 등 본격적 구조조정이 가동됐으며, 대산·여수·울산 단지에서 인접 NCC 통합과 정유-석화 수직계열화 등의 재편 시나리오가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자산가액 산정·지분 구조 등 협상 난도가 높아 효과 가시화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크레딧 측면에선 자율협약은 ‘광의의 부도’에 해당하지 않으며, 핵심 자산(NCC) 매각·분할이나 계열분리 시에는 표준 사채관리계약서·특약에 근거한 조기상환 청구권 등 채권자 보호장치가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나이스신평은 개별 기업의 재무건전성, 계열 지원력, 설비 경쟁력·다운스트림 연계성, 구조조정 실행 효과를 면밀히 모니터링해 신용등급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