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초등학생 시절, 아버님(고 김해수 치의학 박사)이 대구에서 치과를 운영했습니다. 집안에는 가족은 물론이고 간호사, 기공사(치과 기자재 전문가) 등 10여명이 북새통을 이루며 숙식을 함께 했어요. 아버님은 저에게 간호사, 기공사를 언니, 오빠로 부르며 가족같이 대하게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게 지금의 '100년 치과병원'의 원동력이 됐다고 봅니다."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교통회관 2층 케이치과병원.
잠실역 8번 출구에서 5분 거리의 이 병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SINCE 1928'이라는 설립 연도와 역대 원장 사진이다.
김미애 케이치과병원장이 10일 서울 송파구 케이치과병원에서 선대 원장들을 소개하고 있다. [영상=더밸류뉴스]
◆김미애 원장, 1928년 조부 김종환 박사 뜻 이어 '100년 가업(家業)' 눈앞
1대 원장 고(故) 김종환(1901~1966) 박사는 경성치전(4기∙현 서울대 치대)을 졸업하고 1928년 북한 강원도 원산에 치과 개원을 했던 '한국 치의학의 개척자'이다. 당시로는 드물게 미국 유학을 했고 한국 전쟁이 터지자 월남해 서울 서대문구, 대구 등에서 환자를 돌봤다.
2대 고(故) 김해수(1927~1996) 박사도 서울대 치대(3기)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오랫동안 치과를 운영했다.
3대가 현 김미애 원장으로 경희대 치대와 미국 남가주대(USC) 치대를 졸업하고 조부(김종환 박사), 부친(김해수 박사)의 뒤를 잇고 있다. 김미애 원장 외아들 김진환 치과의사도 올해부터 이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며 국내 최초로 '4대를 잇는 치과병원' 역사를 쓰고 있다. 일본에서 치대를 졸업했고 경희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10일 서울 송파구 케이치과병원에서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영상=더밸류뉴스]
'100년 가업(家業)'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보니 이 병원의 한 켠에는 'Dr. Kim’s Family Museum’이라는 문패 아래 고색창연한 흑백 엑스레이, 국내 최초로 도입된 스케일러(치석 제거 기구), 유니트 체어(뒤로 넘어가는 치과 의자) 등이 전시돼 있다. 건너편의 수술실과 진료실에 놓여있는 최첨단 레이저 치료기, 초음파 스케일러, 3D 구강 스캐너 등과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하루 아침에 기업이 사라지는 현실 비즈니스에서 100년 가업의 진기록을 만들고 있는 비결을 묻자 김미애 원장으로부터 "비즈니스 마인드 없이 고생하신 아버님 덕분"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님은 '경영과 이익'을 개의치 않았던 듯 합니다. 한 집에서 간호사, 치과기공사를 언니, 오빠로 부르며 한 밥상에서 아침, 저녁을 같이 먹었습니다. 가난한 환자에게는 무료로 치아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고생했고 저도 불만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저희 케이치과병원의 '신뢰 자산'으로 쌓였다고 봅니다."
◆조건없는 봉사 활동이 '신뢰 자산'... 몽골에도 봉사활동
이는 김미애 원장이 '재능기부의 치과 여왕'으로 불리는 배경이기도 하다. 김미애 원장은 미국 남가주대학에서 유학 시절에도 이동 진료버스를 타고 봉사활동을 자주 했고, 귀국해 1996년 개원 시절부터 인근 서울 송파구 방이복지관 환자에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재능기부 30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복지관에서는 제공 가능한 진료가 제한돼 있다. 복지관에도 치과치료실이 마련돼 있지만 보철 치료의 경우 고액이어서 제공하기 어렵다. 김 원장은 직접 복지관을 방문해 무료 봉사를 하고 있다.
이날 김미애 원장은 이동호 새날동대문장애인자립생활센터 기자 겸 작가를 비롯한 환우들과 점심을 같이했다. 이동호 기자는 뇌병변 환자로 신체가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이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장시간 머리를 고정시켜야 하는 치과 치료 난이도가 높다. 김미애 원장이 고난이도 시술을 통해 이동호 기자에게 위쪽 앞니를 새로 만들어주면서 이 기자는 새 삶을 얻었다고 한다. 이같은 환자들의 입소문과 만족도가 케이치과병원의 무형 자산이 되고 있다.
김미애 케이치과병원장이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사진=케이치과병원]
봉사 활동에 '흥미'가 쌓이다보니 김 원장은 수년전부터 몽골을 찾아 재능기부하고 있다. 수년전 케이치과병원의 유니트체어를 첨단 K3로 교체하면서 기존 유니트체어 5대를 몽골 국립병원에 기증했다. 김미애 원장은 “몽골 정부관계자를 진료하면서 몽골과 인연을 맺게 됐다"며 "몽골의 치과 환경은 우리의 1960년대 수준이고 몽골인들이 치과 치료를 받고 놀라워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 진출 모색중...김진환 원장 참여하며 '100년 4대 가업' 워밍업
김미애 원장이 현재 주목하고 있는 키워드는 '실버(silver)'와 '글로벌'이다.
100세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실버 비즈니스가 뜨고 있다. 정부에서 대한치과의사협회(KDA)와 협업해 노인 돌봄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외아들 김진환 원장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100시대 선진국' 일본이 이런 실버 비즈니스에 앞서 있는데 이를 한국화 시키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인구 절벽이 현실로 다가온 국내 시장을 벗어나 글로벌 시장 개척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김미애 원장은 지난해 케이치과병원을 '외국인 친화병원'으로 선포했다. 글로벌 시장 진출에 앞서 외국인의 치아 치료 노하우를 확보한다는 전략의 일환이다. 외국인 환자를 담당하는 국제진료부에는 영어. 러시아, 몽골, 베트남 등 다국어 코디네이터가 상주해 외국인 환자들이 내원 시 맞춤형 진료 통역을 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진출은 김진환 원장 미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진환 원장은 올해부터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4대 가업' 워밍업에 들어갔다.
김진환 원장이 10일 서울 송파구 케이치과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사진=더밸류뉴스]
김진환 원장은 미국에서 태어나 현지에서 고교를 졸업했고 이후 일본에서 치과대학을 졸업한 뒤 2020년 현지 치과의사 라이선스를 받았다. 글로벌 시장에 해박할 수 밖에 없다. 한국 라이선스는 올해 2월에 땄다. 김진환 원장은 중국과 몽골 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다.
"몽골인들은 육식을 주로 하다 보니 치아 상태가 부실합니다. 성인들 대부분은 발치한 영구치 부분을 그냥 방치하거나 부분 틀니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심한 충치도 신경치료를 하지 않고 그대로 빠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중국인들도 돼지고기를 비롯한 육식을 즐기다 보니 치아 상태가 불량합니다. 글로벌 시장에 'K-덴탈(K-dental)'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김진환 원장도 올해 한국 라이선스를 취득하자 곧바로 어머니의 뒤를 이어 서울 송파구 방이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