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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자본주의 실패에서 배운다] ②양극화와 불평등 치닫는 미국

- 버니 샌더스 미 상원의원, "월가 금융자본가들이 양극화 책임"

  • 기사등록 2019-03-06 1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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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정세진 기자]

"미국인 중 40%가 병원비와 자동차 수리비같이 기본 삶에 필요한 400달러(약46만5,000원)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당 15달러(약1만7000원. 미국 연방 평균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미국 어느 마을에 가서 살든지, 당신이 백인이든 히스패닉(라틴계)이든 혹은 흑인이든지 간에 (경제적으로) 뒤처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계 최대 글로벌 투자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를 비롯한 매체와 인터뷰를 가질 때마다 “미국이 둘로 쪼개졌다”는 말로 미국 내 소득 양극화를 지적하고 있다. 다이먼은 "미국을 둘로 쪼개는 것은 예전에는 인종차별이었지만 이제는 빈부격차"라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빈부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 연구기관 유나이티드웨이는 지난해 발표한 `미국인의 40%가 기본생활비에 허덕인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실업률이 사상 최저를 향하고 증시 수익률은 최고 수준에 이르렀던 2016년경 소득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미국인 중 40%가 임대료, 교통비, 아동 보육비나 휴대폰 요금 같은 기본 소비를 하는 데만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 미국, 상위 20%가 하위 20%보다 16배 더 벌어 


미국 인구조사국과 노동통계국 최근 데이터를 보면 월스트리트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이후 미국의 지니계수는 꾸준히 늘어 0.5를 향해가고 있다. 2017년 지니계수는 0.482다. 

지니계수는 대표적인 분배지표로 0~1 사이 값이다. 숫자가 커질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의미이며, 통상 0.5를 넘으면 폭동 등 극단적인 사회 갈등에 이를 만큼 불평등이 `매우 높은 상태`이다. 


2017년 미국 상무부 조사결과 미국의 소득배율은 16.61로 상위 20%가 하위 20%보다 16.61배를 벌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소득배율이란 월 평균 소득이 작은 가구부터 큰 가구 순으로 일렬로 세운 뒤 최상위 가구의 소득을 최하위 가구의 소득으로 나눠 구한 값으로 빈부격차가 클수록 소득배율 값이 커진다.


미국의 부의 불평등현상.[이미지=더밸류뉴스]


이처럼 미국 국민의 소득 양극화가 악화되기 시작한 것은 미국 경제가 ‘부활’했다고 여겨지는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미국의 계속 감소 추세를 보였고 1970년대 중반까지도 소득분배 불평등도는 중간 수준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그 이후 분배지수가 지속적으로 악화됐고 1990년대에는 더 빠르게 악화됐다. 미국은 지금 소득 분배에 있어서는 불평등도가 아주 높은 수준의 국가가 되어 있다. 


‘상위 1%’의 소득비중 추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상위 1% 소득비중은 조금씩이나마 감소되는 추세를 보였으나, 그 후로는 급격하게 증가했다. 상위 1%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45년 11.1%에서 1977년 7.9%로 떨어졌다. 반면 1980년 8.2%, 1990년 13.0%, 2000년 16.5%, 2010년 17.5%, 2015년 18.4%로 올라갔다. 약 30년 동안에 상위 1%가 차지하는 소득비중이 2.3배 가량 높아졌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권을 가능케한 '트럼프 현상’은 이러한 ‘1% 대 99%’ 구도에 대한 좌절감과 불만이 정치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단순히 블루컬러 백인들만이 아니라 상당수가 화이트컬러 백인 근로자들이다. 


오늘날 미국 내에서 구조조정 때문에 일자리를 잃거나, 위협받거나, 자신의 역량보다 훨씬 낮은 보수를 받으며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블루컬러만 아니라 화이트컬러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보통신 등 21세기 지식집약 산업에 필요한 역량을 충분히 갖췄다는 자부심을 갖고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임금상승의 사다리가 없어지고 실업의 위협에 처하게 된 상황은 자긍심에 큰 상처를 주었다.


특히 회사에서 어느 정도 성공해서 임금을 많이 받는 중상위권 엔지니어나 관리자들이 구조조정의 집중적인 대상이 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상대적 고임금 근로자들에게 가는 비용을 축소하기 위해 기업들은 해외로 아웃소싱을 하거나, 값싼 외국인 근로자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들의 불만은 미국 자본주의의 시스템이 아닌 외국인이나 교역상대국에게 향하게 된다. 


◆ 버니 샌더스, "금융자본가가 미국 양극화에 책임"


민주당 대통령 후보지명 경선자였던 버니 샌더스는 오늘날 미국 경제가 양극화된 주범으로 월가의 금융 자본가들을 지목했다. 반면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트럼프는 미국 사회문제의 적을 외부에서 찾는 전형적인 극우파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민자들과 교역상대국들을 공격한다. 그리고 많은 미국인들은 강한 미국 건설이라는 트럼프의 메시지에 환호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장 트럼프의 강경한 대외정책은 우리 경제에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철강과 자동차 관세폭탄 선언으로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는가 하면, 한국GM 철수 소동의 뒷배에는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을 부활시키겠다는 트럼프의 약속이 있었다. 


미국 사회가 한때 든든한 중산층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경영자본주의가 있다. 경영자본주의 체제에서 미국은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펀드자본주의가 압도적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금융투자자들의 힘을 더 강화하면서 경영자본주의는 총체적 위기를 맞아 몰락했으며 중산층의 몰락도 비슷한 시기 이뤄졌다. 


스톡옵션을 확보한 미국 CEO들의 연봉은 1978년 이후 평균 10배 가량 높아졌다. 금융투자의 수익도 크게 늘어 톱 헤지펀드 매니저들의 수입이 톱 CEO들 수입의 10배에 이르게 됐다. 이 자금의 상당부분은 경영에 필요한 경상비용도 포함하고 있어 근로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더 많이 일하고 덜 받는’ 시스템 속에 편입됐다. 미국 근로자들이 일본 근로자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게 된 시점 역시 1990년대 무렵이다. 


◆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 양극화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한국의 소득분비 역시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한때 경제민주화 논의의 타깃이 된 대상은 소수의 재벌 기업들이었지만 실제로 중산층 몰락과 양극화를 가져온 주체는 미국식 ‘글로벌 스탠다드’를 카피한 구조조정에 있다. 

일반 서민들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는 한편 대기업과 금융기관 임원들은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이 때 일어났다. 또 자본시장이 외국인투자자들에게 적극 개방되면서 고액 연봉을 주는 외국계금융기관, 컨설팅회사, 회계법인, 로펌 등의 진출이 활성화됐다. 


그런가 하면 부실의 책임을 져야 할 시중은행들이 이른바 ‘대마불사’의 논리에 의해 살아났으나, 이들을 생존하게 해 준 서민들은 오히려 금융시장에서 소외되기 시작했다. 이제 대다수의 우리나라 국민들은 예전처럼 저축을 통해 부를 축적하기 어려워졌고, 반대로 내집 마련이나 사업을 하기 위한 은행 대출 문턱은 이전보다 높아졌다.  


기업들이 ‘주식시장 위주 모델’로 구조조정되면서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한국으로 무대를 바꿔 재현됐다. 적극적인 투자와 고용을 꺼리게 되는 한편 강력한 금융 투자자들의 요구에 따라 배당, 자사주매입 등의 형태로 외부에 유출되는 돈이 많아지고 임금 상승이 억제되는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과거 대기업 위주 발전모델을 바꾼다면서 벤처육성을 선언했다. 그러나 벤처는 본래부터 ‘대박’을 노리는 승자독식 구조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소득균형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아직도 정계에서는 경제민주화를 말할 때 대기업 중심 경제정책으로 인한 소득격차를 탓하며 내수회복과 상생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물론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외국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기업 중심으로 경제가 돌아가던 1980~90년대의 소득분배는 오히려 지금보다 공평하게 이뤄졌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제 경제 양극화의 진정한 원인을 재탐색하는 동시에 ‘투자-고용-분배’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며 "재벌들에게 ‘투자-고용-분배’의 주체로서의 위치를 되찾게 하는 한편 기관투자자들은 주주가 아닌 주관재인으로서 원래의 기업 고객이라 할 수 있는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csj@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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