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 채무자에게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채무조정 협상을 요청할 수 있는 ‘채무조정 협상권’을 주는 방안이 추진된다.
8일 금융위원회는 손병두 부위원장 주재로 개인연체채권 관리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이 담긴 소비자신용법 제정 계획을 밝혔다. 과도한 추심을 막고 채무자와 채권자가 협상을 통해 자율적인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빌린 돈을 제 때 갚아 나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상식 밖의 채권추심을 해도 금융사가 실제 건질 수 있는 돈은 원금 범위 안에 머무른다는 현실을 감안해 실질적 정책을 짜겠다는 것이다. 채권자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빚은 못 갚는 게 아니라 안 갚는 것’이라는 인식을 바꾸고, 채무자도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소비자신용법’을 새로 만들어 2021년 하반기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금융채무를 30일 이상 연체하면 금융회사가 곧바로 원리금 일시상환을 요구했다. 높은 연체가산이자도 물린다. 이어 추심업체의 추심이 시작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대부업체 등에 채권이 매각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금융채무불이행자가 연간 26만~28만명씩 장기 연체자로 전락해왔다.
금융위는 “연체기간이 길어질수록 채무자의 상환능력은 급격히 줄어드는데 반해 추심강도와 상환 부담은 오히려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며 “채무자의 추심고통만 키우고 상환의지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해 채권자의 장기적 회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에 소비자신용법에서는 연체채무자가 요청하면 금융회사가 채무조정 협상에 응해야 하는 절차적 의무를 부과할 계획이다. 채무조정 협상기간 중엔 추심이 금지된다. 연체채무자 입장에서는 빚 독촉에 쫓기지 않고 협상을 통해 자신의 상환능력에 맞게 채무조정을 받을 기회가 주어진다. 금융위는 원활한 채무조정 협상을 위해 채무자를 지원해주는 ‘채무조정서비스업’도 새로 도입할 예정이다.
8일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이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개인연체채권 관리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기한 이익 상실 이후 연체부담이 끝없이 증가하도록 하는 (연체)이자 부과방식을 일부 제한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연체기간이 길수록 회수율은 떨어지게 되므로 제한을 통해 연체이자의 상한선을 정하는 등의 대안을 검토키로 했다.
연체채권의 소멸시효를 15년, 25년씩 연장하는 관행도 고쳐나가기로 했다. 무조건 소멸시효를 연장하기보다는 회수 가능성을 판단해서 소멸시효를 완성하는 관행을 확산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손 부위원장은 “채권자의 유인구조를 채무자 친화적으로 개편하는 근본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채무자에 대한 일방적인 보호규범이 아니라 채권자와 채무자간 상생을 위한 공정한 규칙으로서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려는 시도”라고 강조했다.
소비자신용법에는 추심위탁·채권매각 등으로 추심의 주체가 변해도 처음에 돈을 빌려준 원채권 금융회사의 소비자보호 관리책임을 지속하도록 하는 등의 의무가 담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