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기존에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0시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로 제한했던 규정에 예외를 두어, 이 시간대에 온라인 배송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유통법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 시장은 ‘대형마트 vs 전통시장’의 구도였다. 하지만 강산이 변했다. 이제 시장은 ‘온라인 vs 오프라인’으로 재편됐고, 지난해 온라인 쇼핑 비중은 59%를 기록하며 오프라인을 추월했다.
이 과정에서 ‘오프라인 공룡’이라 불리던 대형마트들은 초라해졌다. 이마트와 롯데마트의 매출은 정체되거나 감소했고, 지난 몇 년간 수십 개의 점포가 문을 닫았다. 이번 개정안은 저물어가는 대형마트에 ‘쿠팡의 대항마’라는 새로운 배역을 맡겨 다시금 숨통을 틔워주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전국에 촘촘히 박힌 마트 거점을 물류망으로 활용해 온라인 시장의 판도를 바꾸겠다는 계산이다.
정책의 시선이 ‘쿠팡의 독주 견제’와 ‘대형마트의 수익 개선’에 쏠려 있는 사이, 그 그림자 아래서 더 깊은 한숨을 내뱉는 이들이 있다. 바로 골목상권의 소상공인들이다. 쿠팡의 습격으로 이미 만신창이가 된 이들에게, 이제는 일요일(의무휴업일)에도 새벽 배송 차량을 출동시키는 대기업의 공세는 ‘사형 선고’와 다름없다.
실제로 지난달 말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거세게 반발했다. 한쪽의 규제를 풀어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그 여파가 고스란히 가장 취약한 고리인 소상공인에게 전가되는 전형적인 ‘풍선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거대 공룡들이 배송 전쟁을 벌이는 동안 그 발길에 짓밟히는 것은 결국 동네 구멍가게와 작은 슈퍼들이다.
현재 정책의 시선은 ‘쿠팡의 독주’에 쏠려 있다. 쿠팡을 견제하기 위해 대형마트라는 또 다른 공룡을 풀면 자칫 그 발길에 소상공인들이 밟힐 수 있다. 진정한 상생을 이루고 싶다면 대형마트의 인프라 개방을 유도하거나 소상공인의 디지털 배송 역량을 강화하는 등 체계적이고 세밀한 완충 지대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정치는 우리 사회가 두루두루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안전장치가 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형마트의 수익 개선을 위한 조치를 넘어 플랫폼, 유통사, 소상공인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유통 생태계’에 대한 철학이다.
더밸류뉴스 산업2부 이승윤 기자. [사진=더밸류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