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예린 문화평론가·출판마케터·비평연대
[황예린 문화평론가·출판마케터·비평연대] 9월이건만 아직도 뜨거운 요즘, 에어컨을 발명한 캐리어 씨에게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숨이 턱턱 막혀서 계단 오르기가 버거우면 엘리베이터를 탔고, 땀에 젖은 옷들을 세탁기를 돌린 뒤 습도 걱정 없이 건조기를 돌렸다. 내일은 좀 가을답게 시원해지지 않을지 염원을 담아 AI에게 내일의 날씨를 묻는다. ‘조금 더 편안해질 수는 없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인류는 발전해왔다. 불편을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의 욕구가 가져온 편리함을 누리는 것이 당연히 효율적이고 현명한 선택이다. 이것이 우리의 지극한 상식이었다. ‘편안함의 습격’이 출간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편안함의 습격’ 마이클 이스터 지음, 김원진 옮김, 수오서재. [이미지=알라딘]
사람들이 기대하는 ‘자연에서의 힐링’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벌레는 없고 씻을 곳과 먹을 것이 구비된 환경에서 자연을 안온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제공되지 않는 ‘진짜’ 자연 속으로 쉼을 위해 스스로를 몰아넣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편안함의 습격'을 쓴 마이클 이스터는 인류의 발명품인 편안함을 뒤로하고, 불편함으로 가득한 알래스카 오지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33일 동안의 혹독한 자연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그의 소감은 조금 남다르다.
"이 여정은 나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조용히 자각할 수 있었고, 잃어버렸던 감각들이 돌아왔다."_ ‘편안함의 습격’ 중에서
현대 문명이 당연하게 제공해주었던 그 어떤 것도 누리지 못하는 자연에서의 생활은 그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생각에서 해방시켰다. 그 생각은 바로 ‘결핍에서 벗어나려면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 한다’는 강박이다. 우리는 당장의 배고픔을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 입에 무언가를 쑤셔 넣고, 소음을 참지 못해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우고, 조금이라도 덜 움직이는 방식으로 체력의 손실을 예방하려고 한다. 불편하면 그만두고 더 편한 방식을 찾는 것이다. 행동변화 전문가이자 건강 분야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이스터가 세계 최고의 석학들과 프로 스포츠 선수 등을 만나면서 찾은 사실은 편안하려는 욕구가 우리를 망가뜨려 왔다는 것이다.
‘당신을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는 격언이 꼰대들의 동기 부여를 위한 고리타분한 잔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 권 내내 증명한다. 뇌과학, 정신분석학, 생리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알래스카에서의 여정이 교차되며 신체와 정신 가리지 않고 인생 전반에 통하는 진리라는 ‘불편한 진실’이 선명해진다. 그렇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생이 불편한 것은 당연하니, 그 불편함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아니다. 불편함을 편함으로의 회피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다룰 수 있도록 힘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모토는 내가 정말로 불편한 뭔가를 해내겠다는 겁니다. 틀림없이 도중에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겁니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더 쉽게 포기할 수 있죠. 하지만 '내가' 보고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도전을 마치고 나면 내가 나를 지켜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사실, 힘들었던 상황에 당당하게 대처했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때 말로 다할 수 없는 깊은 만족감이 찾아옵니다. _ ‘편안함의 습격’ 중에서
어쩌면 이미 당신도 저자가 말하는 불편함의 진리를 무의식적으로 체득했을지도 모른다. 요즘 유행하는 러닝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불편함을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며 성장하는 행위다. 숨이 차오르고 무릎과 발바닥은 욱신거리고, 당장이라도 어딘가에 드러눕고 싶어지는 데도 목표한 만큼 뛰는 경험. 그 경험은 단순히 성취감이나 신체 능력의 향상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자신도 몰랐던 가능성을 깨닫게 해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 정해 놓은 ‘컴포트 존’의 한계에서 벗어나면서 세상이 확장되는 것이다.
세상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로만 가득하다고 생각하는 무척 예민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그 누구보다도 ‘불편함으로부터의 해방’이 간절한 당신에게 불편함을 직면하라고 채찍질하는 책을 추천한다니 심술궂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나도 모르게 추구해온 편리함의 강박에서 벗어난다면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불편할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내 몸과 정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휴식을 취하고, 더 나은 나를 만나는 법을 찾는 것은 덤이다. 불편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나를 기꺼이 내던질 용기를 내어볼 수 있기를 바란다.
황예린 문화평론가·출판마케터·비평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