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그룹이 뼈아픈 과거를 딛고 ‘진짜 유통 공룡’으로 재탄생했다. 2010년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구조조정을 시행했던 시기를 지나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동기대비 4배 이상 성장하는 쾌거를 이뤘다. 지난해 연간 매출액도 6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랜드그룹은 구조조정을 통해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이후 사업 효율화를 통해 기업 회생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경기 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은 ‘가성비’를 통해 힘든 시기에 국민들의 가격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뚜렷한 실적 개선 흐름과 발 빠른 리스크 대응, 그룹 전반의 체질 변화를 보여주며 앞으로의 성장 스토리가 기대되고 있다.
◆패션이 끌고 외식이 받쳤다… 가성비 트렌드 지속에 반사수혜 기대
이랜드월드 매출액, 영업이익률 추이. [자료=더밸류뉴스]
이랜드그룹의 지주사 이랜드월드는 지난해 3분기 매출액 1조2412억원, 영업이익 464억원을 기록하며 전년동기대비 각각 2.6%, 341.9% 증가했다. 장기 불황으로 인해 국내 유통·패션 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가성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며 중저가 제품을 판매하는 이랜드그룹이 반사수혜를 얻은 것이다.
특히 패션 부문의 성장이 컸다. 뉴발란스는 2024년 매출액 1조원을 돌파한데 이어 지난해 1조2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2020년 5000억원대였던 매출이 5년 만에 2배 넘게 뛰었다. 패션 부문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0%로 가장 크다. 두 번째로 규모가 큰 SPA(제조·직매형 의류) 브랜드 ‘스파오’는 1~2만원대 가성비 제품을 통해 2024년에 이어 지난해 2년 연속 6000억원대의 매출을 유지했다.
외식 부문의 체질 개선도 한 몫 했다. 이랜드이츠는 애슐리퀸즈, 자연별곡 등 가성비 뷔페를 운영해왔으나 2020년 코로나가 터지며 고전한 바 있다. 당시 연간 매출액 2320억원, 영업손실 638억원을 기록하며 창사 첫해인 2019년 매출액 2363억원(7~12월)을 밑돌았다. 그러나 코로나가 완화되며 다시 외식 수요가 늘었고 여기에 가성비 수요가 더해져 뷔페를 찾는 손님이 많아졌다. 2024년에는 매출액 4705억원, 영업이익 293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이랜드그룹의 반사수익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패션과 외식 부문의 성장도 기대된다.
◆물류센터 화재에도 패션 매출↑… 운영 탄력성 높인 ‘2일 5일 생산 시스템’
발 빠른 리스크 대응도 실적 향상에 도움을 줬다. 지난해 말 있었던 이랜드패션 물류센터 화재에도 미쏘와 뉴발란스의 월 매출이 모두 성장하는 결과를 보여줬다.
지난해 11월 15일 오전 6시 10분 충남 천안시 동남구 이랜드패션 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9시간 30여분만에 불길이 잡혔고 물류센터 경비원 등 직원 3명은 모두 안전하게 대피했다. 다만 신발과 의류 등 1100만점이 소실됐다. 그럼에도 지난해 11월 미쏘와 뉴발란스의 월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19%, 15% 늘었다. 스파오도 소폭 증가했다.
직원들이 서울 성동구 답십리 이랜드 스피드 오피스에사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이랜드]
이게 가능했던 것은 2022년 업계 최초로 도입한 ‘2일 5일 생산 시스템’ 덕분이다. 이랜드월드는 최대 48시간 내(2일) 서울 성동구 답십리 ‘스피드 오피스’ 공장에서 브랜드 주문 접수 후 소량의 제품을 생산해 주요 매장에 입고하고 반응이 좋을 시 해외 생산기지를 통해 최대 120시간 내(5일) 필요한 만큼의 물량을 생산해 매장 진열을 완료한다. 지난해 화재 사건 이후에도 해외 파트너사를 통해 1주일 만에 추가 물량을 생산해 들여왔고 이 덕에 손해를 줄일 수 있었다.
2일 5일 생산 시스템은 '무재고 경영'의 일환으로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정확히 예측해 빠르게 제공하고 필요한 만큼만 생산해 버려지는 상품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다. 실제로 이 시스템을 도입한 후 스파오의 2023년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700% 증가한 350억원을 기록했고 재고율도 20% 미만으로 줄었다.
이번 사건은 이랜드그룹의 혁신적인 생산 시스템과 리스크 관리 역량을 증명하는 계기가 됐다. 내부의 단단한 체계를 통해 안정적으로 외형 성장을 도모하는 기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통·외식 사업에 BG 체제 도입… 구조조정에서 배운 ‘선택과 집중’
올해도 미래 유통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에 들어갔다. 유통과 외식 사업을 분리하고 BG(Business Group) 경영 체제를 도입함으로써 본업 경쟁력을 재정비한다.
채성원(왼쪽) 이랜드그룹 유통BG 대표이사, 황성윤 이랜드그룹 식품BG 대표이사. [사진=이랜드]
이랜드그룹은 지난 2일 통합 운영되던 유통 사업부문을 유통BG, 식품BG로 나누고 각각 채성원 대표, 황성윤 대표를 선임했다. 채 대표는 이랜드리테일 전략기획실을 거쳐 중국 유통 법인 대표를 역임했고 글로벌 유통 환경에서 외형 성장과 수익성 개선을 이끌었다. 이번 유통BG를 밭으며 NC, 뉴코아, 동아, 이천일아울렛 등 도심형 아울렛과 유통 패션 브랜드 전반을 총괄한다.
황 대표는 2008년 이랜드그룹에 입사해 애슐리 현장 매니저와 점장을 맡았다. 이후 애슐리 전략기획팀장, 리미니 브랜드장, 외식부문 인사팀장, 애슐리 BU장을 거쳐 2021년 이랜드이츠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이번 식품BG에서는 킴스클럽, 팜앤푸드 등 유통 하이퍼 부문과 이랜드이츠 외식 사업을 총괄한다. 다만 외식 사업을 담당하는 이랜드이츠 등 각 법인은 기존과 같이 독립 법인 체제를 유지한다.
이랜드그룹의 사업 효율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결국 구조조정의 길에 들어서며 필요한 사업에만 집중하는 전략을 선택하게 됐다. 당시 경영을 총괄하던 박성수 회장은 이랜드를 종합 유통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백화점과 유명 브랜드 등에 조 단위 금액을 투자해 인수합병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백화점, 아울렛, 외식, 호텔, 문화, 레저, 스포츠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게 됐다.
하지만 이로 인해 2013년 부채비율이 399%까지 치솟았고 주요 회사인 중국 법인이 실적 부진을 겪으며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중국 패션 자회사 티니위니, 홈퍼니싱 브랜드 모던하우스, 수십여 개에 달하는 패션 브랜드를 정리하며 재무 건전성을 개선했고 2014년부터 부채비율도 감소해 2019년 174.8%까지 떨어졌다.
이런 식으로 기업 개선에 성공한 이랜드그룹은 현재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이 4배 이상 증가하고 갑작스러운 리스크에도 생산에 차질을 빚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기업 이미지를 회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