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석유화학 합작사인 여천NCC 정상화를 둘러싸고 공동 대주주인 DL그룹과 한화그룹이 충돌하고 있다. 증자와 원료공급 계약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다.
DL그룹의 지배구조와 여천NCC 현황. 단위 억원, %. [자료=공정거래위원회]
◆DL, "실질적 경쟁력 강화 방안 전제돼야"
DL케미칼은 지난 11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약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승인했고, 모회사 DL㈜도 1778억원 규모의 DL케미칼 증자 참여를 의결했다. DL은 “대주주로서 책임경영을 실천해 여천NCC의 경쟁력 회복과 자생력 확보에 나서겠다”며 “단순한 자금 투입이 아닌 철저한 원인 분석과 실질적 경쟁력 강화 방안이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DL은 특히 “올해 3월 1000억원씩 증자를 진행하며 ‘연말까지 현금흐름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으나, 불과 3개월 만에 추가 증자를 요청한 것은 보고가 허위였거나 경영 부실이 방치됐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또 “한화가 원료가 협상에서 자사 이익만을 고집해 여천NCC의 에틸렌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며 “하방 가격 기준 설정과 장기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원료 공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화, "여천NCC 지원의사 분명해야"
이에 대해 한화는 DL의 주장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화는 “DL이 25년간 여천NCC에서 2조2000억원의 배당금을 받아놓고도 1500억원 지원을 거부해 부도 위기를 불러왔다”며 “이번 증자 공시에서도 자금 용도가 ‘운영자금’으로만 기재돼 실제 여천NCC 지원 의사가 불분명하다”고 비판했다.
원료공급 계약과 관련해 한화는 국세청 세무조사 결과를 근거로 들었다. 국세청은 올해 초 여천NCC가 DL계열 대림케미칼에 에틸렌·C4RF1 등을 시장가보다 낮게 공급한 것을 ‘저가거래’로 판단, 법인세 등 1006억원의 추징금을 부과했다. 한화는 “법인세법과 공정거래법에 따라 시가 거래가 원칙이며, 저가공급 조건을 유지하면 향후 동일한 추징 위험이 있다”며 “시장가격을 반영한 새 계약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DL은 한화가 제시한 조건이 “여천NCC의 손익을 악화시키고, 장기 경쟁력을 해치는 수준”이라고 맞섰다. 반면 한화는 “현재 임시 가격도 DL이 거래하는 가격과 동일하며, 2025년 시장 수준”이라며 “대량 거래를 하고 있음에도 물량 할인을 받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이라고 반박했다.
양측의 입장차는 ‘자금 지원과 공급계약 순서’에서도 드러난다. DL은 원인 분석과 구조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고, 한화는 “우선 신속히 공동 증자를 집행해 정상화를 이룬 뒤 공급계약 세부 조건은 추가 협상하자”고 촉구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가격 협상 이상의 문제로 본다. 한 정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대주주 간 갈등이 장기화되면 여천NCC의 현금흐름과 시장 신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법적 리스크와 사업 경쟁력 회복을 동시에 고려한 절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천NCC는 1999년 DL과 한화가 5대5로 설립한 합작사로,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 유분을 생산한다. 양측이 평행선을 그으며 협상이 지연될 경우, 합작사의 정상화는 물론 향후 국내 석유화학 업계 판도에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