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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진의 오늘 고민 해결책] ① 외면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땐 바퀴벌레를 들여다보라

  • 기사등록 2024-07-09 08: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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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직장인이 할 법한 일상의 고민들을 꺼내어 나누고 해답을 들려주는 '박소진, 황예린의 오늘 고민 해결책'을 연재합니다. 출판편집자와 출판마케터가 서점가에 나온 책을 직접 읽고 고민으로 지친 몸과 마음에 활력을 주는 '특급 해결책'을 선별하여 소개합니다. 박소진과 황예린은 MZ세대와 호흡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박소진 문화평론가·출판편집자] 바퀴벌레와 눈이 마주쳤다. 정확히는 이사 후 맞닥뜨린 열한 번째 바퀴벌레였다. 전화 통화를 하던 친구에게서 장마철 20년 넘은 구옥 상가 건물의 한구석에서 바퀴벌레를 발견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며 건물 1층에 아이스크림 가게와 빵집이 입점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던 날(그래, 방 보러 갔던 날) 이미 예상했어야 하는 참사라는 말따위가 쏟아졌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조심히 문을 닫았다. 문 닫는 소리가 들리자 잠시간의 침묵 후에 수화기 너머에서 다시금 친구 목소리가 들렸다. "......야, 바퀴벌레는 어쩌고?" 음, 잠깐 나갔다 오면 사라져 있을 거야.


두려운 것을 외면해 버리는 악질적인 습관은 이런 순간에도 나타난다. 잠든 사이 다시 기어나온 바퀴벌레를 실수로 깔아뭉개 날 밝은 뒤 침대의 머리맡과 베개 밑과 발치와 책상 기타 등등에 조각조각 흩어진 바퀴벌레의 잔해를 마주하게 되는 상상을 골백번 하며 새벽 내내 끙끙 앓는 한이 있더라도, 바퀴벌레에 살충약을 뿌리고 그것을 주워 쓰레기통에 담을 용기는 없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살며 나를 스쳐 지나가는 유형과 무형의 크고 작은 바퀴벌레들을 그저 그렇게 눈 질끈 감고 문 닫아 외면해 버리면 그뿐인, 지독한 회피형 인간. 그런 내가 가장 크게 외면해 온 사실이 있다면, 그건 이 책의 첫 문장이기도 한 다음의 한 마디이다.


"나는 내가 다르고 부적절하고 부족하다고 느낀다." (5쪽)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가난했다. 나 하나만 열심히 노력하면 어떤 꿈이든 단숨에 이루어낼 수 있다든가 게으른 친구들을 손쉽게 치고 나갈 수 있다는 한국식 꿈과 희망이  닿지 않는 그늘에 살았는데, 이 축축한 어둠은 달리 말하면 급식비를 내기 어려워 1600원짜리 인스턴트 스프를 끓여 여러 번 나눠 마시거나 김장철 또래 친구들이 봉사 시간 받겠다고 장난치며 만든 김치가 나에게로 전달되는, 공부를 잘하거나 품행이 단정하지도 않았으면서 '모범상' 같은 이름으로 포장된 모금 기금을 전달 받는 세계였다. 나아질 거라는 희망, 노력하면 된다는 희망, 그런 것은 전부 남 일이었다. 그러나 '겨우' 가난 따위의 외부 문제일 때는 썩 버틸 만했던 나의 그늘은 언젠가부터 조금씩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는데, 이 사실을 인지했을 무렵엔 이미 내 얼굴을 한 그늘이 나를 잔뜩 끌어안은 뒤였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그 시절의 나는 꽤 '인싸'였다. 공부는 조금 못해도 언어 과목 하나는 그 누구보다 잘하는 애, 귀여운 애, 웃긴 애, 그런 수식들 가운데 '가난한 애' 같은 불순물이 끼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집에서 '어려운 환경에도 부모님 속 썩이지 않는 착한 딸'인 동시에 밖에서 '머리 좋고 웃기고 귀엽고 인기 많은 애'이고 싶었다. 아니, 그래야 했다. 그 강박적인 시간 사이에서 내 얼굴을 한 그늘은 끊임없이 내게 속삭였다. "내가 싫어. 내가 미워. 내가 한심해. 나는 쟤들과 다르고, 나는 부적절하고,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 쟤들이 이 진짜 모습을 알게 되잖아? 그러면 날 결코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리하여, 이런 못된 말이나 중얼거리는 나는 마음 깊은 곳에 가두어 버리고 차라리 외면하자고 마음 먹었다. 바퀴벌레 한 마리를 놓아주기 위해 문 닫는 것처럼, 생각 하나를 접어 구석에 처박고 외면해 버리는 일은 쉬웠다. 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박소진의 오늘 고민 해결책] ① 외면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땐 바퀴벌레를 들여다보라'수치심 탐구 생활' 사월날씨 지음, 왼쪽주머니. [이미지=알라딘]


어느 날, 강렬한 붉은색 표지의 이 책을 서점에서 만났다. 손바닥만 한 표지에는 약간 굵은 글씨로 제목과 부제와 저자 이름이 쓰여 있었고, 같은 크기의 얇은 글씨로 책의 도입부 문장이 이어져 있었다.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참석한 사람 같다. 다른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편안하게 분위기를 즐기는 듯 보인다. 침묵이 찾아오는 틈을 노려 용기를 쥐어 짜서 입을 떼본다. 하지만 이미 대화의 흐름은 바뀌어 있어 내 말은 뒷북이거나 자투리가 될 뿐이다."(책의 앞표지에서)


"나는 아무래도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다."(6쪽)


"이것은 모두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중략) 세상과 타인과 묘하게 어긋나 있는 느낌. 나라는 존재가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 나는 이상해서 이해받을 수 없을 거라는 믿음. (중략) 내가 드러나는 것이 고통스러운 감각, 그것이 어딜 가든 나를 따라다니고 있다."(6-7쪽)


표지뿐만 아니라 뒷날개, 뒤표지의 붉은 여백에도. 여기저기 새겨진 문장들은 마치 이런 말을 건네는 듯했다. '너도 그렇잖아. 나도 그랬는걸.'


"내가 생각하는 나는 대단하고 완벽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언제나 현실은 아니라는 증거를 내민다. 그게 자연스러운 인간의 삶이지만 나르시시스트는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을 받는다. 그 순간 나르시시스트의 자아가 무너진다.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실패작이 되고 만다."(책의 앞날개에서)


이 문장에 이르고서야, 악착같이 연기해 온 열아홉 살짜리 '머리 좋고 웃기고 인기 많은 애'는 온데간데없이, 그저 그런 꾸밈을 피곤할 정도로 오래 지속해 온 지친 어른인 내가 보였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그것을 내려놓지 못한 채 계속해서 나를 미워하고 또 꾸며내는 일, 그 사이에서 만들어진 '어디에도 마음 편히 속하지 못하고 계속 겉도는 나'. 저자는 이 대책 없는 순환의 시작이 되는 감정을 '수치심'이라 정의한다. 사람을 발전케 하는 건강한 종류의 수치심과는 다른,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 끊임없이 나를 눈치 보게 하고, 거짓말하게 하고, 어떤 순간에도 내 스스로를 볼품없게 느끼도록 만드는 추레한 감정. 이따금 느꼈던 이유 모를 수치, 불안, 분노, 우울, 그 외의 수많은 감정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수치심'이 나온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더는 열리지 않는 핵심 마트료시카"인 그것은 수많은 '거대한 마트료시카' 껍데기를 주워 입어 몸을 숨긴다.


저자는 비슷한 감정 씨앗이 발아한, 비슷한 경험으로 힘들었던 사람들과 '수치심 워크숍'을 열었다. 여러 사람과 '수치심'을 주제로 끊임없이 대화하며 부끄러운 경험을 조심스레 공유하고 또 공감 받았다. "쉬이 발설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말해봤자 이해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을 내면 깊이 심어놓는 것"이 수치심의 고약함이라는 것을, 내면의 이 그늘이 사실은 나 혼자 감당해야 할 비밀스러운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부딪혀 직접 깨달았다. 홀로 골몰하지 않고 바깥으로 꺼내 놓는 것이 '수치심'을 이겨내는 단 하나의 방법이라는 깨달음은 책의 말미에도 워크숍 후기와 함께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나는 지금 약간 후련한 상태다. 바퀴벌레 한 마리도 어쩌지 못해 눈 감아 버리는 나약한 나를,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피로한 연극의 일부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어서. 여러분이 읽은 나의 글이 내게 '수치심 워크숍'의 역할이 되어 주는 것 같다. 내가 다음으로 하게 될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망할 바퀴벌레와 다시 마주쳐도, 피하지 않고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 그다음의 일은 그다음에 생각하련다. 마음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제야 막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수치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다음은 피하지 않고, 다른 껍데기로 덮어 버리지 않고 가만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선은 그것부터가 시작이다.


[박소진의 오늘 고민 해결책] ① 외면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땐 바퀴벌레를 들여다보라박소진 문화평론가·출판편집자



rely0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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