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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박정호 기자]

<중세의 역사>는 게르만족의 로마침입에서 몽공과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전의 아프리카까지 중세 1000년의 역사를 통해 경제와 정치의 기원을 설명하고 있다. 시각자료를 충분히 활용하고 구체적인 역사 내용을 주제별로 담았다. 

<중세의 역사> 브라보 시리즈 09. 안드레아 바키니 지음.  남경태 옮김. 사계절. 원제 The Middle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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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 책에 나오는 주요 문장이다. 


- 세상이 나빠지지 않느냐고? 실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고용 사회는 인류 역사상 매우 독특한 시기였다. 이렇게 조용하고 한가롭고, 평등의 논리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시대가 있었다면 나에게 알려달라.


- 그리스도교는 노예제에 뿌리를 둔 로마 사회에서 평등의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 기원전 1세기 게르만족은 로마 제국의 북방 경계선 주변에 살았다. 이들에게는 계급이 없었다. 토지는 부족 전체의 공동 재산이었다. 토지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과도한 부를 쌓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반쯤 유목민이었던 이들은 부족의 영토 내에서 자주 이동했고, 농업과 아울러 소와 돼지를 키우며 살았다.

게르만족에게 전쟁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인근 지역을 약탈하거나 기습했고, 이들의 신화에는 전쟁과 폭력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 이슬람 예언자 무하마드(마호메트)는 7세기에 이슬람교를 창시햇다. 이슬람교는 아라비아 반도의 유목민 베두인족의 문화, 언어, 정치, 경제를 통합하는 강력한 요소였다. 불과 100년이 채 되지 않아 이슬람교의 영향권은 에스파냐에서 중국, 카프카스 산맥, 사하라 사막까지 이르렀다. 무하마드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존중했다. 무하마드는 아바르함과 예수를 자신의 선배라고 여겼다. 따라서 유대인과 그리스도교는 특별 세금을 내고 유대교 회당이나 교회를 새로 짓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얼마든지 자신들의 종교를 유지할 수 있었다.


- 기근과 전염병으로 유럽 인구는 급격히 줄었다.  A.D 1,000년에 유럽 인구는 역사상 최저 수준인 약 3,000만명으로 떨어졌다.


- 신기술이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세 농노의 집을 들여다보자. 지금의 현대인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했다. 


- 르네상스 시대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맹이었다. 글을 읽을줄도, 쓸줄도 몰랐다. 그래서 이들을 감동시키는 방법은 책이나 글이 아니라 그림이어야 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그림과 벽화가발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중세 대학이 가르친 학문은 문법, 수사학, 논리학, 신학, 법학, 의학 등이었다.  중세 대학에서 책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교과서를 읽는 것은 학습의 첫단계였고, 둘째 단계는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 중세는 계급 사회였다. 심지어 성직 사회 내부에서도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미천한 출신의 시골 사제와 귀족 출신에다 자신의 봉토를 소유하고 있는 성당 총회의 구성원은 엄연히 달랐다. 이 점은 12세기 수도원의 경우에도 비슷했다. 주로 기도로 시간을 보내는 기사 가문 출신의 수도사와 특수한 의무를 수행하는 농부 출신의 수도사는 신분이 달랐다


- 탁발 수도회는 11세기 교회를 휩쓸었다. 탁발 수도사들은 일체의 물질적 소유를 거부하고 자선에 의존해서 살았다. 이들의 주요 사명은 설교였다. 이들은 당대의 사회 구성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사제 출신이 아닌 기술자나 상인 출신의 설교자들도 부를 팽개치고 진실한 복음을 찾아 나섰으며, 모든 형태의 사유 재산을 버리고 초라한 옷과 음식으로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서 보잘 것없는 일과 육체 노동에 자신의 삶을 바쳤다. 그들의 말에 사람들을 귀를 기울였다.


- 1252년 교황 인노켄티우스는 고문을 승인했다.


- 14세기 유럽에서 의학은 원시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공중 위생이라는 관념이 사실상 없었고, 그래서 도시는 전염병이 창궐하기에 좋은 무대였다. 1347~1351년 4년동안 유럽에 끔찍한 흑사병이 창궐했다. 이로 인해 15세기 중반의 유럽 인구는 14세기초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러데 이것을 고비로 경제와 정치의 역사에 새 장이 열렸다.



pjh@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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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08-05 1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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