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을 무겁게 하여 아무렇게나 굴려도 오뚝오뚝 일어서는 어린아이들의 장난감'.
오뚝이의 사전적 정의다. 그렇지만 '오뚝이' 대신 '오뚜기'를 표준어로 잘못 알고 있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 종합식품기업 오뚜기(회장 함영준)는 그만큼 한국인들에게 친숙하고 대중화된 브랜드다.
오뚜기는 1969년 고(故) 함태호(1930~2016) 창업주가 나이 마흔에 풍림상사를 창업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올해로 업력(業力) 54년. 이 기간 오뚜기는 주가 100만원을 훌쩍 넘는 주식시장 황제주, 다국적 식품기업 하인즈의 국내 시장 진출을 '10년 전쟁' 끝에 물리친 토종 기업, 심장병 어린이를 소리소문없이 지원해온 '갓뚜기'(God+오뚜기), 역도 선수 장미란의 숨은 후원자 등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오뚜기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그간 오뚜기의 해묵은 숙제이던 '글로벌 시장 진출'이 최근 개선 시그널을 보이면서 오뚜기 주가가 10년 하락세를 멈추고 반등세로 돌아선 것이다. 내수 위주 전략을 펼치던 오뚜기가 해외 시장 진출에 성공해 K-푸드 키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에 재계와 주식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매출 3조 클럽' 진입... 해외 비중 두 자리수↑
오뚜기는 지난해 처음으로 연매출액 3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실적을 살펴보면 매출액 3조1833억원으로 전년비 16.2% 늘었다(이하 K-IFRS 연결). 영업이익(1857억원)과 당기순이익(2679억원)도 전년비 각각 11.5%와 106.1% 늘었다. 지난 2007년 '매출액 1조 클럽’에 가입했고 2016년 2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6년 만에 3조원대 기업으로 점프한 셈이다.
주목할 부분은 해외 매출액 비중이다. 지난해 오뚜기 해외 매출액은 3265억원으로 전년비 19.2% 성장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오뚜기의 해외 매출액 비중은 10.3%로 처음으로 두 자리수를 기록했다. 그간의 오뚜기의 해외 매출액 비중을 살펴보면 8.8%(2018년)→8.9%(2019년)→9.3%(2020년)→9.9%(2021년)에 이어 지난해 10.3%에 도달했다. 다만 올해 상반기의 해외 성과는 다소 부진했다. 올해 상반기 해외 매출액은 1617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6.2% 감소했다. 이에 따라 해외 매출액 비중도 9.5%로 다시 한 자리수가 됐다.
가장 성과를 내고 있는 곳은 베트남으로 지난해 매출액 646억원을 기록해 2017년 273억원 대비 약 3배 증가했다. 베트남은 오뚜기의 동남아 시장 전략 거점이다. 지난 2018년 준공한 베트남 박닌공 장에선 진라면 등 각종 라면을 비롯해 케첩과 마요네즈 등을 생산하고 있다.
베트남 라면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세계라면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베트남의 1인당 라면 소비량은 85봉지로 2년 연속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총 소비량(84억 봉지)만 따져도 중국(405억 봉지), 인도네시아(142억 봉지)에 이어 글로벌 3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올해 상반기 베트남 매출액은 331억원으로 전년비 14.8% 감소했다
오뚜기의 글로벌 시장 성과는 그간의 노력에 비해 늦은 감이 있다. 오뚜기의 글로벌 시장 진출의 역사는 10년이 훌쩍 넘는다. 오뚜기는 2007년 베트남 법인(OTTOGI VIETNAM)을 설립하면서 처음 해외 시장에 진출했고 현재 미국, 중국, 뉴질랜드를 합쳐 4개국에 해외 법인을 두고 있다. 수출 대상국은 미주,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세계 70여 개국에 이른다.
10여년이 훌쩍 넘은 이제서야 글로벌 시장 성과가 가시화하고 있는 셈이다. 오뚜기와 더불어 '라면 빅3'로 불리는 농심, 삼양식품이 일찌감치 'K-라면' 키플레이어로 자리잠은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해 기준 농심,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액 비중은 각각 37%, 65%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오뚜기의 글로벌 시장 성과가 늦은 것은 오뚜기가 종합식품기업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오뚜기는 국내 라면 시장점유율이 농심(53.3%)에 이어 2위(24.1%)이지만 전체 매출액에서 라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라면 사업에 집중하지 못해온 측면이 있었다.
오뚜기의 시장 점유율 1위 품목은 다양하다. 지난해 기준 오뚜기가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품목으로는 분말카레(83.8%), 3분 요리류(84.0%), 참기름(47.1%), 오뚜기밥(30.9%) 등이 있다. 라면 시장점유율은 앞서 언급한대로 2위(24.1%)이다.
◆한때 100만원대 황제주... 최근 다시 '꿈틀'
재계에서는 오뚜기의 향후 글로벌 성과가 얼마나 개선될 지에 주목하고 있다. 함영준 회장이 직접 나서 'K-라면' 사업을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함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제품의 다각화 노력과 함께 해외시장 수요 예측에 따른 제품 출시 등으로 매출 성장을 만들어가자"고 강조했다. 글로벌 시장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최근에는 미국 법인 산하에 생산법인(오뚜기 푸드 아메리카)을 설립했다. 이와 함께 미국 현지에 생산공장을 건립하기 위한 부지 검토에도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미국에 생산공장이 없는 오뚜기가 현지생산 인프라를 구축해 직접 생산과 판매에 나서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주식시장에서는 벌써부터 시그널이 나오고 있다 최근 10년 주가를 살펴보면 오뚜기는 2015년 8월 146만원으로 최고가를 찍었다가 지속적으로 하락해 올해 7월 34만2500원으로 내려 앉았다가 이후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2015년 최고가를 찍을 무렵 오뚜기는 진짬뽕이 대히트를 치고 있었다.
주식 투자 사이트를 들어가보면 "조흥을 제외하고 자회사들이 관계회사에서 종속회사로 깔끔하게 정리됐다. 그래서 향후 매출액, 영업이익이 기대된다", "함영준 회장과 주주들과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았으나 지배구조 개선으로 최대주주와 개인주주들 간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다. 상속세 납부를 위한 배당금 증가는 덤"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같은 흐름에는 지배구조 개선도 한몫했다.
오뚜기는 지난해 오뚜기라면지주와 오뚜기물류서비스지주를 흡수합병하면서 염가매수차익이 발생했다. 연가매수차익은 기업의 인수합병(M&A) 과정에서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을 장부가액보다 낮은 가격에 인수할 때 생긴다. 염가매수차익은 영업외 수익이며 손익계산서의 이익을 증가시킨다. 이 효과로 지난해 순이익 상승폭은 106%나 됐다. 올해 경영실적도 양호하다. 올 들어 3분기까지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11.3% 늘어난 2조6197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배구조 단순화를 위한 개편작업은 2017년 첫 발을 떼 5년 만인 지난해 마무리했다. 2017년 오뚜기삼화식품, 2018년 상미식품지주와 풍림피앤피지주에 이어 2020년에는 오뚜기제유지주, 오뚜기에스에프지주를 흡수합병했다. 지난해 10월 오뚜기라면지주와 오뚜기물류서비스지주를 흡수합병하면서 작업을 완료했다.
이로써 오뚜기를 정점으로 상장회사인 조흥을 제외한 모든 관계사를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오뚜기→오뚜기라면→오뚜기' 등 그룹 내 순환출자 구조도 해소됐다. 오뚜기 측은 "이번 지배구조 개편은 효율성 및 경쟁력을 제고하고 기업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 지분구조를 미국과 같은 선진국형으로 재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속세 납부하려다 대출 받기도…아들은 경영수업·딸은 뮤지컬 배우
함영준 회장은 2010년 회장에 취임했다. 부친 별세로 주식을 상속받아 발생한 상속세 1500억원 가량을 5년에 걸쳐 완납했다. 주식을 매도하고 대출을 받으려 한다는 소식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함 회장은 언론 인터뷰나 대외활동을 사실상 하지 않지만 회사 안에서는 임직원들과 어울려 맛집 탐방을 다니며 활발하게 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내 식당에서 직원들과 동일하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식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슬하에 아들 함윤식(32) 오뚜기 과장과 딸 함연지(31)씨가 있다. 함연지씨는 뮤지컬 배우다. 함 회장은 함연지가 운영하는 유튜브에 출연하기도 했다.
지난해 지배구조 단순화로 3세 경영 승계 절차가 용이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계열사들을 100% 자회사로 두고 있는 오뚜기 지분만 늘리면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오뚜기 지분현황을 보면, 함 회장이 25.7%로 최대 주주다. 함윤식 과장은 2.79%, 함연지 배우는 1.07%다. 업계에선 함 과장이 2021년 입사했고 아직 30대임을 들어 경영 승계가 시간을 두고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