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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기 경남대 명예교수·전 한국중재학회 회장] 나이 들어서 세상을 유심히 살펴보면 숫자가 미래를 말한다는 사실을 더욱 절실하게 알게 된다. 주식투자, 경제정책, 선거, 소송 등 여러 분야에서 숫자가 미래의 답을 암시해주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숫자라는 관점에서 보면, 세상에는 숫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역사상 돈을 가장 많이 번 헤지펀드 운용자로 소문난 레이 달리오(Ray Dalio)가 최근에 『변화하는 세계질서』(The Changing World Order)라는 신간을 출간하여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레이 달리오 '변화하는 세계질서', 레이 달리오 저, 송이루, 조용빈 역, (2022). [사진=예스24]

이 책은 인류 경제사의 불확실한 미래를 통찰하려고 시도하는 책이지만 놀랍게도 과거의 역사와 숫자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레이 달리오의 관점이 짙게 반영되어 있는 책이다. 새로운 책을 출간하고 중국 매체와 인터뷰를 하면서, 레이 달리오는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자신의 네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다른 현자(賢者)들과의 더 많은 소통, 부의 다양한 배분 외에, 중요한 두 가지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다음, 역사의 규율을 배우고, 현실을 이해하며, 세계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심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실수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의 숫자까지 탐색하여 교훈을 얻고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레이 달리오는 지나칠 정도로 숫자에 귀를 기울인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그는 그러한 방식으로 세상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헤지펀드를 만들고 운영하게 되었다.


숫자는 미래를 말한다. 도처에 숫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성공한 사례들이 널려 있다.


사람들 사이의 다툼을 해결하는 방법과 관련하여, ENE(Early Neutral Evaluation, 조기중립평가)라는 개념을 발전시킨 미국 사람들도 숫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다. 미국에서 소송이 제기되면 ENE 절차에 따라 법원이 중립평가인(neutral evaluator)을 선정하여 그 소송의 주요 쟁점, 승소여부, 소요비용 등을 당사자들에게 미리 알려주어 당사자들이 결과를 예측하게 한 후 소송을 더 진행할지 아니면 중간에 서로 화해하고 합의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한다. 그 결과 당사자들은 본격적인 판결에 이르기 전에 결과를 대체로 알 수 있어서 합리적인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어, 소송 천국인 미국에서, 소송사건 중 3%만이 판결까지 간다거나 전체 소송의 1% 정도만 최종 판결까지 간다고 하는 놀라운 자료들이 나오는 것이다.


또한 스위스는 2016년 기준으로 인구가 841.9만 명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16.33%에 지나지 않지만, 숫자를 중시하여, 차등의결권 제도나 완화된 독점규제 같은 자신들에게 적합한 경제정책을 실시하여 그들은 포브스 100대 기업 리스트에 우리나라보다 5배의 기업을 올리고, 국민 1인당 GDP는 201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2.86배에 달했다. 자신의 상황을 나타내는 숫자를 무시하고 전통적 경쟁법이나 회사법 교과서의 이론대로 독점규제 정책을 실시하거나 회사법을 시행했더라면 스위스는 지금쯤 경제적으로 형편없는 국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숫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지혜로운 사람들과 국가가 있는 반면에, 여전히 숫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우둔한 사람들이 많다. 2022년 6월 1일에 실시된 대한민국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숫자를 무시하는 어리석은 사람들로부터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서울특별시 교육감 선거에서, 실제 투표에서는 진보를 표방하는 조희연 후보가 2위인 조전혁 후보를 619,046표, 14.61%p 차이로 이겼지만, 보수를 표방하는 조전혁, 박선영, 조영달 후보가 단일화를 했다면 조희연 후보보다 640,979표가 더 많아서 넉넉하게 이길 가능성이 높았다. 직전 여론조사 지지율은 단일화를 이룬 진보 후보 조희연 25.4%, 강신만 0.6%이고, 보수 단일화를 가정한 지지율은 23.7%로 진보진영의 후보가 2.3%p 앞서 있다. 보수 후보들은 하늘이 무너져도 자진해서 단일화를 해야 그나마 승산이 있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실제 투표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김동연 후보가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를 8,913표, 0.15%p 차이로 이겼지만, 보수를 대표하는 김은혜 후보와 강용석 후보가 단일화를 했다면 김동연 후보보다 45,845표가 더 많아서 이길 가능성이 높았다. 직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김동연 39.1%, 김은혜 37.7%, 강용석 1.6%였기 때문에, 김은혜와 강용석이 단일화를 하면 겨우 0.2%p 차이로 보수 후보가 승리할 수 있는 상태였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욕심이 많다. 뻔한 결과에 대해서도 욕심을 부리며 숫자가 암시하는 경고에도 눈 하나 깜작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망한 뒤에야 사태의 진행에 망연자실하게 되고, 뒷감당하는데도 앞앞이 부끄러움을 감소해야 한다. 욕심이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욕심은 사람의 절대적 본능이다. 사람은 욕심이 있어야 하고, 욕심이 있어야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은 욕심 때문에 흥하기도 하고 욕심 때문에 망하기도 한다. 욕심에 포커스를 맞추어 세상을 보면, 세상에는 사람수만큼 욕심이 존재하고, 이 개인의 욕심은 서로 충돌하게 되므로 누군가가 나서서 욕심의 한계를 그어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욕심의 충돌은 파멸을 부르고 욕심의 조화는 기쁨을 가져온다.


지금까지 많은 종교와 철학들이 욕심을 다스리는 교리와 이론들을 제시해 왔지만, 사람이 욕심을 극복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다행하게도 숫자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존재해 왔고, 욕심의 충돌을 막고, 욕심의 조화를 촉진하는 촉매가 되고 있다. 참으로 안심되는 사실이다. 숫자는 사람에게 미래를 보여주며 말을 건다. 욕심의 포로가 된 사람들은 숫자가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무모하게 욕심을 내다가 결국 일을 그르치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이나 조직이나 국가에 숫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전략가가 있어야 한다.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에도 여당 지도부가 완벽한 승리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보수 진영의 강용석 후보와 단일화를 하였다면, 결과는 역전되었을 것이고, 서울시 교육감 선거도 보수 후보들이 여론조사의 결과를 신중하게 받아들여서 욕심을 자제하였거나 보수 정당의 지도부가 리더십을 발휘하여 후보 단일화를 성공시켰으면 결과가 바뀌었을 것이고, 개인 후보들도 사람들에게 욕을 먹지 않고 지지자들에게 앞앞이 민망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물론 여론조사 결과가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고, 또 선거결과를 예측해 달라고 의뢰한 사람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결과가 조작될 수도 있다. 여론조사 기관에서 의뢰인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결과를 제시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고려하면, 그것을 해석하는 전략가들은 그러한 점을 고려하여 다소 넉넉하게 데이터를 해석할 필요가 있다.


많은 경우에 숫자는 미래를 말해주기 때문에, 숫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전략가들은 대체로 당사자들이 바른 결정을 하도록 하여 일이 성공적으로 되게 한다. 숫자 전략가들은 미국과 같이 효율적인 ENE제도를 설계해 내며, 스위스와 같이 나라가 작아도 많은 큰 기업을 가진 강한 나라를 만들어 낸다. 투자업계에서도 숫자를 가장 잘 다루는 짐 사이먼스(James Harris Simons)가 전설적 가치투자자인 워런 버핏(Warren Edward Buffett)을 제치고 무려 31년 동안 가장 큰 수익율을 내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국가정책, 소송, 선거, 주식투자 등 모든 영역에서 숫자를 다루는 전략가가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금융문맹에서 탈출하는 것도 숫자로부터 시작해야 하고, 대한민국의 선진화도 숫자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숫자가 미래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숫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세계를 선도하는 일류국가가 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일류국가 중에서 차지하는 순위도 더 높아질 것이다.


숫자는 미래를 말한다. 세상에는 숫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있고,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또한 숫자를 교묘하게 왜곡하는 야바위꾼도 있어서 주의해야 한다. 숫자에 속지 않고 숫자로 미래를 예측하려면 숫자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숙련된 전략가가 되거나 그런 전략가를 옆에 둘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mentorforall@naver.com


윤진기 경남대 명예교수(전 한국중재학회 회장). [사진=더밸류뉴스] 

저작권자 Ⓒ 윤진기.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출처를 표시하여 내용을 인용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원문은 버핏연구소 윤진기 명예교수 칼럼 ‘경제와 숫자이야기’ 2022년 6월 14일자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저자가 원문에 각주 설명을 추가로 더 보충했습니다. 자세한 것은 원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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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6-16 13: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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