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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뉴스] 도심 속 전통 ’보신각’…'제야 종소리'로 새해 알린다

- 3.1운동 구심점, 코로나19 영향으로 휴전 이후 최초로 타종 행사 일시중단

  • 기사등록 2021-10-16 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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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김도형 기자]

서울 종로구 종각역 4번 출구를 나오면 도심의 첨단 빌딩 숲을 배경으로 전통 기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보신각(普信閣)이다.


한국 전통 건축물처럼 보여 목조건물로 착각하기 쉽지만 보신각은 제관 양식을 갖춘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2층 누각이다.


서을 종로구 보신각 전경. [사진=더밸류뉴스]

‘보신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제야의 종소리’다. 우리나라에 제야의 종 개념이 널리 퍼진 것은 일제강점기의 영향이 크다. 현재의 ‘제야의 종소리’는 경성방송국이 정초에 스튜디오 현장에서 종을 울려 방송한 것이 시초였다.


광복 이후 연말을 기념해 타종하는 제야의 종은 6·25전쟁 때 소실된 보신각을 중건한 1953년 연말부터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선 종을 총 33번번 치는데, 보신각이 오경(새벽 4시)에 사대문을 열리는 것을 알릴 때 33번 타종한 것에서 유래됐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정전 협정 이후 67년 만에 처음으로 ‘재야의 종 타종 행사’가 취소되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보신각 3.1운동 기념 터 표석. [사진=더밸류뉴스]

오늘날 보신각터와 보신각에 걸린 종은 옛 그대로가 아니다. 1413년(태종 13년)에 종루를 통운교(종로네거리)로 옮겨와 1458년(세조 4년)엔 새로운 종을 주조해 달았으나 임진왜란으로 종루과 종 모두 파괴됐다. 그 후 조선 후기까지 수차례의 화재와 중건을 겪은 후 1895년(고종 32년)에 종각에 ‘보신각’이란 편액이 걸린 뒤 종 또한 보신각종이라 불리게 됐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파손된 종각을 1953년 중건했다가 1979년에 다시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종루로 복원했다. 지금 보신각에 걸려있는 종 또한 성덕대왕신종의 복제품이다. 원래 걸려있던 보신각 동종은 보존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서울 종로구 보신각. [사진=더밸류뉴스]

종로 보신각 앞은 3.1 독립만세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했던 곳이기도 하다. 1919년3월1일 종로 보신각 앞은 군중들의 타종을 시작으로 서울지역 독립 시위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했다. 


또 1919년 4월23일엔 임시정부(한성정부) 수립을 선포하는 국민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비록 사전에 계획된 대대적 만세시위는 무산돼 학생 몇 명이 '국민대회 취지서'와 '선포문'을 뿌리고 만세를 부르는데 그쳤지만, 이날 배포된 '한성정부 선포 문건'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당시에 '한성정부'의 법통성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


moldaurang@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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