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교 기자
"은행과 증권은 '금융'이라는 한 우산에 있지만 '물(water)'과 '불(fire)'의 관계입니다. 성격이 전혀 달라요. '증권맨'은 리스크를 과감하게 떠안고 내지를 수 있지만, 은행원은 절대 그렇게 못합니다."
국내 최대 지방금융지주사인 BNK금융지주의 수장(首長) 연임 1년을 지나고 있는 김지완 회장의 최근 행보를 지켜본 어느 금융계 인사의 평가다. '국내 최연소 증권사 CEO' 기록을 가진 '증권맨' 출신의 김지완 회장이 은행이 본업인 금융지주사 CEO를 경영하면서 명(明)과 암(暗)이 엇갈리고 있다.
[일러스트=홍순화 기자]
◇김지완 회장은...
현 BNK금융지주 회장. 1946년 부산 출생(75세). 부산상고∙부산대 졸업. 부국증권 사장. 현대증권 사장. 하나대투증권 사장. 하나금융지주 부회장. 문재인 대통령 대선후보캠프 경제고문. 2017년 9월 BNK금융지주 회장 취임.
◆'증권맨' 김지완 회장 vs. '은행원' 빈대인 행장 태생적 갈등
BNK금융지주는 지난 3월 임원후보추천위원회와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산하 부산은행장과 경남은행장을 동시 교체했다.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은 BNK금융지주 매출액 1, 2위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신임 부산은행장에는 안감찬 전 부산은행 부행장이 선임돼 빈대인 행장의 뒤를 잇게 됐고, 새 경남은행장에는 최홍영 경남은행 부행장이 선임돼 황윤철 행장의 뒤를 잇는다.
이번 은행장 교체를 둘러싸고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다. 두 은행장 교체는 형식상으로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와 주주총회에서 이뤄졌지만 실제로는 BNK금융지주를 이끄는 김지완 회장의 의중이 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한때 BNK금융지주 회장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빈대인 전 부산은행장이 중도 사퇴한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빈대인 전 부산은행장의 낙마 사유로는 '지주'(BNK금융지주)와의 갈등의 결과라는 데 이견이 없다. 지주는 라임펀드, 부실 대출 등을 이유로 빈대인 전 행장을 상대로 감사를 벌이고 징계위원회를 진행하기도 했고, 빈 전 행장은 여기에 맞서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그렇지만 갈등의 근원을 파고 들어가면 빈대인 행장과 김지완 회장의 백그라운드의 차이가 깔려 있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형적인 은행원 출신으로 안정을 중시하는 빈대인 행장과 여러 증권사를 거쳐 '증권맨'의 승부사 기질이 몸에 배인 김지완 회장의 '궁합'이 맞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이 지난해 주주총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BNK금융지주]
◆'증권맨' 출신으로 BNK금융지주 혁신 성과
김지완 회장은 지난 2017년 3월 BNK금융지주 회장 선임 당시 '증권맨' 출신 금융지주사 CEO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김지완 회장은 1977년 31세에 부국증권에 입사해 4년만에 임원(영업이사)으로 승진했고 1988년 53세에 당시 최연소 증권사 사장에 올랐다. 이후 현대증권(현 KB증권) 사장, 하나대투증권 사장, 하나금융지주 부회장 등을 거쳤다. 전형적인 '증권맨'이 금융지주사 회장이 선임되자 '은행 문외한이 낙하산 인사로 취임했다'는 말이 나왔다. 김지완 회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이고 2012년 문재인 대통령 대선캠프 경제고문을 지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결과적으로 내부 순혈주의를 깬 김지완 회장 선임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다.
김지완 회장이 취임한 2017년 이후 BNK금융지주 실적을 살펴보면 지난해를 제외하면 개선세가 드러난다. 2018~2019년 매출액,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이 모두 개선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지완 회장의 사실상 경영 첫해인 2018년 매출액 5조985억원, 영업이익 7498억원, 당기순이익 5381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각각 5.77%, 26.16%, 26.61% 증가했다.
2016~2020 BNK금융지주 실적 추이. 단위 억원.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올해 1분기 실적도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 BNK금융지주가 공시한 연결 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은 각각 1조3938억원, 2627억원, 2035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매출액은 12.45% 감소했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27.56%, 37.09% 증가했다. 다만 지난해 실적은 코로나19 사태로 부진했다. 이는 빈대인 부산은행장과 환윤철 경남은행장의 교체 사유의 하나이다.
김지완 회장 취임 직전 BNK금융지주가 주가조작으로 위기를 겪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성과는 더욱 돋보인다는 평가다.
2017년 BNK금융지주는 주가 조작 사건으로 성세환 당시 BNK금융지주회장과 김일수 부사장이 구속 기소되는 사태를 겪었다. 검찰에 따르면 2015년 유상 증자에 따라 주가가 22% 이상 떨어진 상황에서 성 회장은 거래업체들에게 주식 매입 요구를 지시했다. 당시 거래업체 대표들은 390억원 상당인 460만여주를 매수했고 BNK투자증권 임직원들은 유상증자 발행가액 산정 기간에 맞춰 주식을 매수하며 주가 시세를 조종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하루만에 8000원이었던 주식이 8300원까지 올랐다. 당시 호가 관여율은 금감원의 시세조종 혐의 기준인 5%를 훌쩍 뛰어넘는 17.7%였다.
금융권의 한 인사는 "증권맨 DNA를 가진 김지완 회장이 위기에 빠진 BNK금융지주의 변화를 이끄는데 적임자였던 게 증명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이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김지완 회장은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했다. 임기 만료는 2023년 3월이며, 재연임은 불가능하다. 김 회장 연임을 결정하기 1년 전인 2019년 3월 BNK금융지주는 정관을 바꿔 회장 연임을 나이가 아닌 회수(1회)로 제한했다. 당시 김지완 회장의 나이는 72세였다.
◆"'포스트 김지완' 선정에 따라 김 회장 평가 엇갈릴 것"
그렇지만 김지완 회장이 퇴임 이후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가는 지금부터의 행보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최대 관건은 '포스트 김지완' 선정이다. 다시 말해 차기 회장 선정 프로세스를 매끄럽게 마무리하면 김 회장의 평소 "명예로운 회장으로 남고 싶다"는 소망이 현실화하겠지만 잡음이 증폭되면 감점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부산은행장과 경남은행장이 동시 교체가 '매끄럽지 않은 출발'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가운데)이 지난해 7월 부산 본사에서 열린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BNK금융지주]
'포스트 김지완'이 아직까지는 확실하게 눈에 띄지는 않고 있지만 잠재 후보군은 있다. BNK금융지주는 포스트 CEO 후보군으로 BNK금융지주 사내이사, 지주 최상위 업무 집행자(부사장 이상), 5조원 이상 자회사(부산은행장, 경남은행장) CEO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인물은 BNK금융지주의 김상윤∙명형국∙김영문 부사장, 안감찬 부산은행장, 최홍영 경남은행장의 5인이다.
왼쪽부터 김상윤∙명형국∙김영문 BNK금융지주 부사장, 안감찬 부산은행장, 최홍영 경남은행장.
김지완 회장은 차기 후보로 진취적인 문제해결능력을 갖고 있고, 은행장을 포함한 주요 보직 경력을 가진 인물을 선호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상윤∙명형국∙김영문 BNK금융지주 부사장은 은행장 경력이 없다. 김상윤 부사장은 감사원 출신으로 그룹감사부문장을 맡고 있다. 부산대 행정학과를 졸업했고 감사원 공보관, 감사원 공공기관감사국장, 삼성화재 고문 등을 역임했다. 김영문 부사장은 부산은행 고객지원그룹 그룹장, BNK금융지주 전무 등을 역임했다. 명형국 부산은행장은 부산은행 영업본부장, BNK금융지주 부사장 등을 역임했다.
안감찬 부산은행장은 부산 광안동∙감전동 지점장, 북부영업본부장, 여신운영그룹 부행장 등을 지냈다. 최홍영 경남은행장은 부산 공업탑지점장, 여신관리부장, 여신지원본부장 등을 지냈다. 여기에다 빈대인 전 부산은행장과 황윤철 전 경남은행장도 그간의 경력을 바탕으로 잠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정권교체기와 맞물려 외부 인사 영입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이 경우 김지완 회장 선임과 유사한 케이스가 된다. 금융권의 한 인사는 "김지완 회장은 증권맨 출신답게 은행의 보수성을 깨고 혁신을 가져올 인물을 원할 것이다. 이번 부산은행장과 경남은행장이 교체된 것도 김 회장의 눈높이에 부응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 내년 이맘때면 후계 구도의 큰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