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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등의결권, 毒인가, 藥인가] ②포드자동차는 116년을 어떻게 살아남았나

  • 기사등록 2019-06-20 08:3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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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밸류뉴스=최성연 기자]

차등의결권 찬성론자들이 이 제도의 장점을 주장할 때 성공 사례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기업은 미국 포드자동차(Ford Motor Company)이다.  


올해로 116년의 역사를 가진 포드자동차는 숱한 자동차 기업들이 명멸해가는 와중에도 꾸준한 실적으로 메이저 기업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경쟁사 GM(제너럴 모터스)과 크라이슬러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파산보호신청을 했지만 80여명으로 이뤄진 '포드 일가'(Ford's family)는 똘똘 뭉쳐 정부 지원 없이 회사를 살려냈다.1903년 이 회사를 설립한 '자동차왕' 헨리 포드의 가족과 후손들의 가족애, 단결의 위력이 발휘된 것이다. 


1900년대초 일반 대중을 위한 자동차 'T형' 앞에 선 '자동차왕' 헨리 포드. [사진=포드자동차 홈페이지]

 ◆ '포드 일가', 지분 7%로 의결권 40% 행사


이처럼 포드자동차가 우량 장수 기업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로 포드자동차가 도입한 차등의결권이 거론되고 있다. 현재 포드자동차의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창업주인 포드 집안이 소유한 지분은 7%에 불과하지만 차등의결권에 따라 40%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포드 일가가 이렇게 주식수 대비 많은 의결권을 갖게 된 것은 1956년 IPO(기업공개)를 하면서 포드자동차 주식을 A주(Class A Stock)와 B주(Class B Stock)의 두 종류로 나눠 발행했기 때문이다. A주는 보통주이며 1주당 1개의 의결권을 갖는다. 그런데 B주는 다르다. B주는 1주당 16.5개의 의결권을 갖는다. 포드 일가는 B주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 


1분기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포드 이사회 의장인 빌 포드가 가장 많은 B형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810만주 정도다. 2013년에 다른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370만 주를 넘겨받았다. 빌 포드의 지분은 총 7100만 주의 B형 주식 중 11.5%에 해당한다. 


지난해 포드자동차의 일부 주주가 차등의결권을 폐지하라고 요구하자 빌 포드 이사회 의장은 "포드자동차의 가족기업 속성은 다른 주주들과 회사에도 도움이 되어왔으며 포드가족은 지속적으로 회사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했다. 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우리 (포드) 가족은 똘똘 뭉쳐 GM이나 크라이슬러와 달리 정부 지원 없이 회사를 살려냈다"며 차등의결권의 장점을 강조했다. 


[이미지=더밸류뉴스]


◆ 워렌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도 차등의결권 시행중


차등의결권은 해외 선진국에서 낯설지 않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집안은 발렌베리그룹의 지주회사인 인베스트사의 지분 19%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지만 41%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주식을 2년 이상 보유하면 1주에 2개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차등의결권을 채택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1주 1의결권'의 상법 규정에 따라 차등의결권을 허용되지 않는다. 워렌 버핏이 최고경영자로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도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고 있다. 


실제로 회사의 오너는 지분유지 문제 때문에 회사의 재무관리에서 다양한 제약을 받는다. 좋은 투자 유치 기회가 와도 오너 지분에 좋지 않으면 포기해야 한다. 김도정 에셋디자인 투자자문 대표는 "차등의결권은 오너로 하여금 지분희석에 따르는 경영권 상실 우려없이 필요한 유상증자를 할 수 있게 한다"며 "일반 주주들은 불만을 품을 수 있지만 회사의 부채비율이 낮아지고 재무구조가 개선되면 주가가 상승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페이스북, 러시아 대선 개입 의혹에도 견제장치 없어 


그렇지만 차등의결권이 허용된 이들 국가에서 이 제도가 장점만 낳고 있는 것은 아니다. 


차등의결권의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는 대표 기업은 페이스북이다. 1분기 사업 보고서 기준으로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CEO가 보유한 지분은 20%에 불과하지만 차등 의결권을 통해 60%에 가까운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다. 여기에다 마크 저커버그는 이 회사 이사회 의장직까지 겸하고 있다보니 광범위한 재량권과 소유권을 갖고 있다. 


페이스북은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연루 의혹, 캠브리지애널리티카(CA)의 페이스북 사용자 정보 무단 입수·사용 사건, 페이스북 광고에서 특정 소수집단 배제 기능 문제 등 이슈가 터질 때마다 신뢰가 악화되면서 수익성도 나빠졌다. 주가는 40% 이상 추락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페이스북 이사회 및 주주들은 제한된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2004년 구글이 차등의결권 주식을 보유한 채 상장한 이후 페이스북 등과 같은 차등의결권 주식을 가진 벤처기업들의 상장 러시가 이뤄졌다. 이들 기업의 창업주들은 적은 지분을 소유하고도 과반수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함으로써 기관투자자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됐다. 기관투자자들은 차등의결권을 반대하는 입장이며, 이미 차등의결권 구조로 상장한 회사에 대해서는 차선책으로 기한부 일몰조항을 요구하고 있다.

 

2016년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미디어기업 비아콤 전 CEO와 이사들은 차등의결권으로 기업을 지배하고 있던 섬너 레드스톤 회장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레드스톤(93)은 건강과 정신 능력, 가족, 내연녀들과 관련된 여러 사건을 터뜨렸고 이로 인해 비아콤의 주가는 3년간 55% 이상 떨어진 바 있다. 


그런데도 차등의결권제도를 도입한 비아콤은 레드스톤 소유의 내셔널 어뮤즈먼츠가 의결권의 80%를 장악하고 있어, 다른 투자자들이 회사를 바로잡을 힘은 없었다. 이는 창업주, 창업주 가족 또는 소수 경영진에 의결권이 집중되어 있는 기업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장우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는 "차등의결권의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미국에서도 '차등의결권 일몰제'를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페이스북이나 구글, 알리바바 등은 이미 크게 성장한 후 차등 의결권을 도입해 상장했을 뿐, 차등의결권이 기업을 성장시킨 동력이 아니었다"며 "한국기업들이 지배구조나 사업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오너에만 유리한 결정을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차등의결권이 허용되면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csy@theva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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