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대표이사 김경배, 구 현대상선)이 SK해운의 일부 부문 인수를 위한 실사에 착수했다. 매각 주관사인 모건스탠리는 SK해운과 관련해 HMM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막바지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인수 주체인 HMM도 매각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SK해운 인수는 단순한 인수합병이 아닌, 사업 다각화를 통한 기업 가치 제고 차원의 전략적 행보로 해석된다.
지난 20일 안병길 한국해양진흥공사(이하, 해진공) 사장은 "HMM 매각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은 사실과 다르다"면서도 "적절한 인수자를 찾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혀 매각의 현실적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최근 세계 1위 해운사인 MSC와의 '프리미어 얼라이언스' 출범을 통한 글로벌 서비스망 확대와 이번 SK해운 인수 검토 등 회사의 경영 전략이 매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HMM 벌크 유조선(VLCC) 'Universal_Leader' [사진=HMM]
◆HMM '실적의 역설'...영업익 501%↑에도 시총 10조원대 '답보'
HMM이 지난해 코로나 특수 이후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연간 매출 11조7002억원, 영업이익 3조5128억원으로 전년대비 각각 39%, 501% 증가했다. 4분기에는 영업이익이 전년동기대비 2253% 급증한 1조1억원을 기록했다. 홍해 사태와 수에즈 운하 중단 등 지정학적 리스크와 미-중구간 물동량 증가로 전 노선 운임 상승,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 증가 등의 영향이 컸다.
HMM 최근 분기별 매출액 및 영업이익률 추이. [이미지= 더밸류뉴스]
실적의 질적 개선이 두드러진다. HMM은 미주 배터리 설비, 중동 석유화학 등 고부가가치 화물 영업에 집중하는 전략을 펼쳤다. 여기에 1만3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투입을 통한 원가 절감, 원화 가치 하락 효과까지 더해지며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 이는 단순한 업황 호조를 넘어선 경영 성과로 평가받는다.
현금 창출력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HMM의 현금성·단기 금융자산은 2019년 6578억원에서 2021년 6조4631억원, 2023년 11조7568억원을 거쳐 2024년 3분기 14조원까지 늘어났다. 이는 2030년까지 계획된 대규모 투자를 뒷받침할 수 있는 탄탄한 자금력이다. SK해운 인수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호한 지표에도 불구하고 HMM의 시가총액은 여전히 10조원대에 머물러 있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현금성 자산 대비 시가총액 차이보다는, 이 막대한 현금이 어떻게 활용될지에 쏠리고 있다. SK해운 인수 실사와 MSC와의 프리미어 얼라이언스 출범은 그 해답의 일부를 보여준다. 특히 프리미어 얼라이언스를 통해 서비스 항로를 26개에서 30개로 확대하는 계획은 HMM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행보다.HMM 최근 10년 매출액 및 영억이익률 추이. [이미지=더밸류뉴스]
다만 시장은 여전히 신중한 태도다. 수에즈 운하 사태와 같은 특수 상황에 따른 일시적 호황이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 해운업 특유의 경기 변동성 등이 위험 요소로 지적된다. 결국 HMM의 진정한 가치는 이러한 리스크 요인들을 얼마나 잘 관리하면서 보유한 현금을 성장 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 시장의 중론이다.
◆HMM '매각 딜레마'...SK해운 인수로 돌파구 찾는다
매각 불확실성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현재 HMM은 해진공과 산업은행(이하, 산은)이 대주주로, 4월 72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합산 지분이 71.7%까지 오르게 된다.
지난해 하림그룹과의 매각 협상 결렬은 HMM 매각의 복잡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하림 측은 HMM 현금배당 제한과 일정 기간 지분 매각 금지, 정부 측 사외이사 지명 권한 등에 대해 5년으로 제한할 것을 요구했으나, 해진공과 산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14조원에 이르는 현금·현금성 자산의 활용 방안이 주요 쟁점이었다.
HMM 품목별 매출액 비중. [자료= HMM 사업보고서]
더구나 해운업은 호황과 불황이 극단적으로 오가는 경기변동주라는 특성이 있다. 실제로 HMM의 지난해 호실적은 수에즈 운하 중동 분쟁과 미국 관세 인상 예고에 따른 중국의 물량 밀어내기 등 특수 상황이 겹친 영향이 크다. 이러한 일시적 호황이 끝나면 실적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HMM이 SK해운 인수에 나선 것은 새로운 변수다. SK해운 탱커 사업에 관심을 표한 것으로 전해지며, 기업이 보유한 탱커선과의 시너지 제고에 힘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궁극적으로 SK해운 인수는 벌크 사업 확장을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SK해운 지분 100% 기준 몸값이 3~4조원대로 평가되는 가운데 2조원 규모의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이며 이는 HMM이 현금성 자산을 활용한 첫 대형 투자가 될 수 있다. 다만 매각을 추진 중인 기업이 대규모 인수에 나선다는 점에서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HMM, SK해운 인수·MSC 제휴로 '성장 투트랙' 가동...글로벌 톱5 도전
HMM은 보유 현금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성장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2030년까지 총 23조5000억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수립했으며, 이 중 컨테이너 사업에 12조7000억원, 벌크 사업에 5조6000억원, 통합 물류 사업에 4조2000억원, 친환경·디지털 강화에 1조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컨테이너 선복량을 155만TEU까지 확대하고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5%대까지 끌어올려 글로벌 톱5 해운사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HMM은 프리미어 얼라이언스 출범을 통해 1위 해운사인 MSC와 협력해 글로벌 해운사로서의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자료= HMM]
현재 진행 중인 LNG 부문을 제외한 SK해운의 사업 부문 인수 검토 외에도 친환경 규제 대응, 디지털라이제이션 등 경쟁력 강화 방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9000TEU급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9척을 비롯해 LNG 추진선 등 친환경 컨테이너선 도입을 지속하고 대서양, 인도, 남미 등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시장 중심으로 신규 서비스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번달부터 출범하는 새로운 협력체제 '프리미어 얼라이언스'는 HMM의 글로벌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서비스 항로를 26개에서 30개로 확대하고, 유럽 항로를 8개에서 11개로 늘리며, 차별화된 직기항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세계 1위 해운사인 MSC와의 협력은 동서 항로에서 HMM의 입지를 크게 강화할 전망이다.
HMM 2030 중장기 경영전략. [자료= HMM]AI 기반 물류 최적화 시스템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물류 추적 강화 등 디지털 전환도 속도를 내고 있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중심의 선대 구조는 글로벌 10대 해운사 중에서도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1만TEU 이상 초대형 선박 비중이 80%에 달해 운임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HMM 관계자는 "올해는 미국 보호관세 정책으로 인한 무역 갈등과 공급망 재편 가속화 등 불확실성이 산종하고 있다"며 "보유한 현금성 자산을 바탕으로 SK해운 인수와 프리미어 얼라이언스 출범 등 공격적인 성장 전략을 추진하고 주주환원 정책 강화와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시장의 신뢰도를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